한국일보

존 뮤어 트레일 222마일 <2>

2006-11-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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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뮤어 트레일 222마일 <2>

김 인 호 <설암 산악회 총무>

40파운드 배낭, 산 오를수록 ‘천근만근’

8월 5일 (토요일)

리틀 요세미티(Little Yosemite)에서 Sunrise Trail을 통해 Tuolumne Meadow까지 23마일을 오르려면 2일이 더 소요된다. 전혀 준비하지 않은 일정은 추가할 수 없어 다시 Happy Isle로 나와 Tuolumne Meadow까지 자동차로 이동하기로 했다. 아침부터 서둘렀건만 Tuolumne Meadow까지 올라오니 오후 1시가 되었다. 김영환씨는 우리를 내려주고 Red’s Meadow에 보급품을 떨어뜨려야 하는 관계로 갈 길이 촉박한 상황이었다.
Trailhead에서 김영환씨와 헤어진 후 들어선 Tuolumne Meadow는 말 그대로 평평한 푸른 초원이었다. 당연히 걸음걸이는 가벼웠고 무거운 배낭도 그리 큰 짐이 되지 않았다.
은근히 나머지 JMT 구간도 이 정도이었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이 든다. 약 3마일 지점에서 토파즈처럼 푸르고 맑은 물이 가득 고여 있는 곳에 당도하였는데 틴에이저들이 송어 낚시를 하고 있었다.
좌우로 초록의 침엽수들이 알맞게 솟아 있고 멀리 눈 덮인 산을 배경으로 맑은 물이 쉴 사이 없이 쏟아져 내리는 초원의 광경은 달력 속에서 본 그 풍경과 똑았다. 너무 흥분되어 이곳저곳 둘러보다가 한 마디 던졌다.
“남가주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풍경이지요?” “남가주뿐 아니라 세계 어디에도 이런 곳이 없답니다.” 임헌성씨가 대답한다.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흐르는 것이 너무 아까울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약 8마일 지점에 잠시 휴식하는 동안 가벼운 등짐을 진 백인청년이 멈춰 선다. 커다란 라디오를 어깨에 맨 차림새로 보아 레인저 같기도 한데 전혀 공무집행관 같지 않고 JMT를 즐기는 여느 산악인 같았다. 임헌성씨가 라디오 성능에 대해 질문을 했는데 자기도 잘 모른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을 팍 레인저라고 소개한 후 조금 더 가면 좋은 캠핑장소가 있다고 알려준다. 자신 또한 가고 싶은 곳까지만 가고 캠프 한다고 한다. 자유스러운 그 모습에 참 좋은 직업을 가졌소 하고 부러울 따름이었다.
이윽고 평지도 지나고 산 위로 경사로를 오르는 즈음하여 야영을 하기로 했다.
물가에 두명의 캠퍼가 자리를 잡고 있어 그 옆에 캠프하기로 하고 양해를 구했다. 짐을 내리다 말고 장소가 협소한 듯하여 망설이는데 길 위편에 더 넓은 곳이 있다고 알려준다.
장말 길 위편으로 캠핑할 수 있는 장소가 여럿 있고 Fire ring까지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바로 옆에는 여성 산악인들 3명이 캠핑을 하고 있었다. JMT 여행자들 중 혼자 여행하는 솔로 산행인이 전체의 절반이고 그 중 절반이 여성이라고 했는데 정말 여성 JMT 주자들이 많이 보인다.
저녁으로 밥(Long-grain Rice)과 골뱅이 된장국을 맛있게 먹은 후 잠을 청하는데 왼편 발바닥에 물집이 잡혀 있다. 이제 시작인데 난감했다. 거즈에 테입을 붙여 임시방편하고 잠에 들었다. 침낭 속에서 앞으로의 여정을 잘 마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잠에 들었다.


HSPACE=5

<도나휴 패스를 지나고 곧바로 나오는 앤젤 아담스 와일더니스(Ansel Adams Wilderness). 사진작가 앤젤 아담스를 기념하여 명명한 곳이다>

8월 6일 (일요일)

이번 JMT 주자 3명이 모두 기독교인이자 안수집사들이었다. 아침을 먹고 손을 잡고 기도와 찬송으로 예배를 대신했다. 출발 첫날부터 식당이든 공공장소든 가리지 않고 이번 JMT를 무사히 마치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는데 우리의 모습이 주위의 외국인 산행인들에게도 덕이 되었던지 모두들 우리를 젊잖게 대해 주었다.
아침 7시20분에 출발하여 계속 깊은 숲속으로 올라가는데 맑은 물이 쏟아지는 냇가를 사슴 한 마리가 가로 지른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잎사귀 한입 베어 먹고는 얼른 숨어버린다. 산행 중에는 재빨리 사진을 찍기 위해 조그마한 카메라를 주머니에 항상 넣고 다닌다.
임헌성씨는 줌 렌즈가 달린 커다란 카메라를 가지고 왔다. 무게도 제법 되고 기동성이 떨어지는데 하며 염려하였는데 내 카메라의 경우 메모리와 배터리가 5일째 되는 날 동이 났지만 임헌성씨 카메라는 마지막 날까지 제 성능을 발휘했다.
조금 올라가 도나휴 패스(Donohue Pass)를 맞닥뜨리게 되었다. 1만3,000피트는 됨직한 높은 바위산에 눈이 덮여 있고 그 아래로 호수가 있으며 메도우 가운데로 물이 쉴 새 없이 흐르고 있었다. 바라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광경이어서 카메라에 풍경을 담다보니 10장을 금방 찍어버렸다. 메모리 계산을 해보니 하루에 찍을 수 있는 사진은 약 30장도, 아껴 가면서 찍어야 하는데.
JMT 기간에 하루 한두 개의 패스(Pass)를 꼭 지나게 된다. 패스란 한국말로 재, 고개란 뜻으로 눈물 나게 고생되는 곳이라 여기면 된다. LA 근처에도 카혼 패스(Cajon Pass) 등이 있는데 서부 개척시대 당시 눈 덮인 고개를 지나오느라 많은 사람들이 동사하거나 굶어죽은 곳이다. 바위산 앞을 통과하는 도나휴 패스는 1만1,050피트 높이로 남가주 최고봉 샌고고니오(San Gorgonio) 높이 정도인데 앞에서 봐서는 도저히 어느 쪽으로 통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서서히 올라가다 보니 물길이 사방에서 쏟아져 내리는데 겨울 내 바위산이 머금고 있던 눈을 서서히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하이 시에라(High Sierra)의 산들은 꼭대기에 화강암 바위산들이 머리를 내밀고 있고 두꺼운 눈을 잔뜩 안고 있어 한여름에도 거의 만년설인 곳이 많은 듯싶다.
눈 녹아 흐른 물이 산 아래 커다란 호수를 만들고 그 물이 아래로 흐르면서 푸른 초장을 조성한다. 그리고 급하게 흐르는 물길이 급경사 바위를 타고 내리면 그대로 폭포가 된다. JMT 산행 도중에는 사진으로만 알 수 없는 것이 있는데 바로 소리이다. 바람소리, 새소리와 함께 진동하며 떨어지는 물소리는 빼놓을 수 없는 하이 시에라의 숨소리이기도 하다.
도나휴 패스를 지나고 곧바로 사진작가로 유명한 앤젤 아담스를 기념하여 명명한 앤젤 아담스 와일더니스(Ansel Adams Wilderness)로 들어섰다. 내려가는 도중 점심을 하면서 빨래도 하기로 했다.
준비한 캠프용 비누와 샴푸로 목욕과 빨래를 하는데 물이 제법 차다. 시원한 목욕을 위해 옷을 벗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기들이 득달같이 몰려든다. JMT는 모기와의 싸움이라더니 경험자들의 말씀이 틀린 것이 없다. 목욕을 마치고 올려놓은 쌀을 조사해보니 설익었다. 약 1만피트(3,000미터) 높이여서인지 밥이 제대로 되질 않는다. 반찬인 김치 튜나 찌개는 짠 듯하여 물을 더 부었더니 멀건 국으로 변했다.
설익은 밥과 멀건 국으로 점심을 마친 후 다시 일어서려니 발바닥이 천근 같이 무겁고 아프다. 다시금 등산화를 고쳐 신고 몇 걸음 디뎌보니 견딜 만 했다. 40파운드의 무게로 누르는 배낭에 숙달이 되지 않아 그 값을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이었다. 산속에서는 모든 물자가 귀한 법, 자신의 가진 것에 감사하고 제한된 자원에서 만족하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오늘의 교훈을 되새겨본다.
오후에 한참을 걷다 보니 Thousand Island Lake가 눈앞에 나타났다. 호수 위로 우뚝 선 바위산이 제법 높아 보여 지도를 보니 Banner Peak으로 표시되어 있다. 모양새가 고약하게 생겨 다시 보니 다행히 고도가 1만2,938피트 밖에 되지 않았다.
이때 즈음에서 지난밤 같이 캠핑장을 썼던 3명의 백인 아가씨들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북가주의 유레카 근처에서 왔다고 소개하면서 맘모스에 있는 Red’s meadow까지 간다고 한다. 최근에 친구가 된 3명이 우정을 다지기 위해 JMT 산행을 결정했다고 한다. 장기 산행이 처음인 듯 무척 피곤하여 이 근처에서 캠프 하겠다며 호수 근처로 내려간다.
우리의 목적지인 에다이자 호수(Ediza Lake)는 약 4마일을 더 가야 하는데 날이 벌써 어두워졌다. 첫날 요세미티 밸리로 내려가는 바람에 스케줄에 차질이 생겼는데 지난 2일 동안 목적지까지 당도 하지 못하고 조금씩 밀려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었다.
Ruby Lake 앞에 도착하니 혼자 식사를 하려던 백인 산악인이 자리를 양보해 준다. 아래편의 호수에는 캠핑 제한이 있다고 친절히 알려준다. 보름달이 되려는 듯 밝은 큰 달빛아래 루비 호수위로 눈 덮인 바위산이 대칭으로 드리워져 있다. 저녁으로 물을 부어 끓이는 Mountain House 라쟈냐를 먹었는데 맛이 훌륭했다.

HSPACE=5

<▶평평한 푸른 초원이 계속되는 툴룸니 메도우(Tuolumne Meadow)에서 조래복씨가 잠시 쉬고 있다>

김 인 호 <설암 산악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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