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 속의 부처

2006-11-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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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열 두 고리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겨울의 기나긴 밤/어머님하고 둘이 앉아/옛이야기 들어라/나는 어쩌면 생겨 나와/이 이야기 듣는가?/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리라>
이렇게 노래한 소월도 부모가 되었다 갔고, 두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도록 말미암은 나도 어느덧 부모 된 지가 오래다. 정말 내가 어쩌다 이 세상에 생겨 나왔는지는 여태 잘 알 수가 없지만, 부처님이 밝히신 대로 무엇으로 말미암아 일어남의 법칙, 즉, 인연소기의 고리를 따라 나름대로 꼽아 보자면 다음과 같다.
나는 틀림없이 조만간 늙어 죽을 것인데(노사), 그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생). 태어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지 아무 것도 없는 데서 뻥튀기 되어 나온 것이 아니다(유). 그 무언가가 있었음은 어떤 끌림, 즉 집착에서 비롯되었다(취). 왜 우리는 무엇에 이끌리고 매달리는가? 그건 사랑의 감정 때문이다(애). 그 사랑은 느낌으로부터 일어나고(수), 느낌은 만남이나 닿음이 있을 때 생긴다(촉). 이런 만남이나 닿음은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육입). 이러한 감각 기관은 이름과 물질이라는 게 있기에 그걸 감각하기 위해 생긴 것이고(명색), 이름과 물질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우리 마음이 빚어 낸 것이다(식). 마음은 우리의 잠재적인 무의식적인 힘에서 생겨난 것이고(행), 그 잠재력의 밑뿌리는 알 수 없는 어둠 속에 박혀 있다(무명). 그리고 이 어둠의 밑뿌리를 파고들면 다시 늙고 죽음이라는 첫번째 고리가 걸려 있어 이러한 순환은 영원히 되풀이된다.
이렇듯 모든 사물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이고 서로 의지하고 관련을 맺으며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는 것이지 우주 천지에 혼자만의 독불장군은 없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이것이 있으니 저것이 있고 이것이 사라지니 저것이 사라진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으며 결과 없는 원인도 없다. 내 행위의 잘잘못 또한 마찬가지이다. 삶에는 숱한 우연과 시행착오가 있지만 그 밑바닥에는 필연의 그물이 얽혀져 있다는 말씀이다.
불자란 여러 겁을 두고 이어져 오는 이러한 인과의 멍에 속에서 세상에 좀 더 생산적인 인연을 지어 놓고 가기 위해 스스로를 갈고 닦는 사람들이다. 창조론과 기적보다는 우선 인과를 믿고 그에 따른 응보를 믿는 한없이 조용하고 착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삼라만상의 본바탕이 비어 있음을 깨닫고 스스로 겸손해지려 하며 영원할 수 없는 현상 세계에 끌리는 자신의 병을 고치려 할 뿐 허무의 감방 속으로 스스로를 몰아 넣지는 않는다.
나의 바깥만을 탓하지 않고 우선 나의 안을 살피고 들여다보지만, 때로 오늘같이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면 삶과 죽음의 열 두 고리를 돌아도 보며, 나는 어찌하여 이 세상에 생겨 나온 지를 다시금 차분히 묻기도 하는 사람들이다.

이 원 익 (태고사를 돕는 사람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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