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권사님들 ‘큰일했다’

2006-11-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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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돈 아끼고 생활비 줄여… 장학기금 70만달러 조성
나성영락교회 안나장학회‘화제’

거라지 세일·장터 운영 15년째
1983년 설립 후 신학교 돕기 등 꾸준
“후학 위해 도움 된다니 뿌듯해요”

“미국으로 이민 와서 먹고살려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그것만을 위해 산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줄 수 있어 기쁘네요. 죽기 전에 이렇게 장학 기금을 조성하니 너무 좋아요.”
25일 나성영락교회에 ‘안나장학기금’을 헌납하는 안나장학회의 박강옥 공동대표는 소감을 이렇게 정리했다. 이런 좋은 날을 보기 전에 세상을 뜬 권사 두 명이 떠오른 듯 했다.
박 대표만 이런 감정을 갖는 게 아니다. 회원 107명(작고한 두 명 포함) 중 많은 이가 이미 여든이 넘었는지라, 후학을 위해 장학금을 마련했다는 사실에 뿌듯해했다.
이전에 교회에 증정한 10만달러까지 합치면 안나장학회의 장학금은 총 80만달러. 이 돈이 어떻게 마련됐던가. 23년 전 장학회 태동의 주역이었던 김성갑(83)권사의 말을 들어보자.
“나이 든 노인들이 무슨 돈이 있었겠나. 자식들이 준 용돈에서 떼어 1년에 300∼500달러를 장학금으로 적립했다. 어떤 이는 정부에서 받은 생활 보조비를 아껴 써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이문성 권사가 거들었다. “간단히 말해서, 티끌 모아 태산이지.”
정말 그랬다. 거부가 뭉칫돈을 내놓은 게 아니었다. 한 푼 두 푼 정성이 모인 것이다.
권사들에 따르면, 매주 토요일이면 이 권사네 마당에서 거라지 세일이 열렸다. 세탁소에 맡겨놓았다 안 찾아가는 옷가지를 팔았다. 다 1달러였다. 그렇게 판 첫 날 300달러가 모였다. 이 권사는 “왜 그리 재미있었는지, 다들 기뻐 죽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거라지 세일은 장터로 이어졌다. 교인이 기부한 옷을 팔았다. 그렇게 꼬박 15년을 장터에서 일해 장학금을 적립했다. 이 권사는 “신나서 팔다보니 내 핸드백과 신발도 파는 물건이랑 함께 들어간 적도 있었다”고 웃었다.
이번에 교회에 헌액하는 70만달러 중 장터와 거라지 세일, 교회 바자회로 모은 돈은 12만달러가 조금 안 된다. 58만달러는 권사들이 용돈을 아낀 것이다. 그래도 김성갑 권사는 “100만달러를 채워서 교회에 내려고 했는데, 아쉽다”고 말한다.
안나장학회가 창립된 것은 1983년으로 거슬러간다. 교회 창립 10주년을 기념해 떠났던 수련회에서였다. 강사였던 이상현 프린스턴신학교 교수가 “2세 교역자를 키우지 않으면 다음 세대에는 한인 교회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 말이 자극제가 됐다.
60세 이상 권사 모임인 안나선교회의 회원 20여명이 뜻을 모았다. 장학회가 설립된 뒤 첫 열매는 87년 프린스턴신학교에 증정한 5만달러였다. 그리고 96년 여성 교역자 양성을 위해 10만달러를 교회에 내놓았다. 98년에는 풀러신학교를 돕기 위해 10만달러를 쾌척했다.
안나장학회라는 이름으로 독립재단이 된 2002년부터는 매년 꾸준히 돕는 일을 했다. 첫해에 형편이 어려운 대학생과 대학원생 11명에게 1,000달러씩을 지원했다. 그리고 올해로 5년째 중국 옌벤 과학기술대 학생 15명에게 매년 1만2,000달러를 보내고 있다.
권사들은 앞으로 장학금 지출 계획에 대해서는 “교회의 장학위원회에서 알아서 잘 할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 후손들이 잘 크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그저 만족한다”고 한다.

<김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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