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윤실 호루라기 ‘너는 어떻고? 너나 잘해!’

2006-10-2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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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안 되어서의 일입니다. 한참 비판적인 시절이었습니다. 교회에 몸담고 심방전도사로 깊이 관여되어 있었던 저였지만 못 마땅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신학대원생들이 모인 자리에서 항상 열띤 토론이 있었고, 서로들 핏대를 올려가며 자신의 주장을 펼치곤 했었습니다. 모두들 자기만 의인인 듯, 자기 아니면 한국교회는 희망이 없는 듯, 자기만이 교회를 개혁할 수 있는 듯 열띤 토론을 벌였습니다.
그 중에 저도 실제 목회현장에서 경험하며 담임목사와의 갈등과 불만을 토로하면서 교회의 비리(?)를 신랄하게 성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옆에 있었던 나이 많은 형이 불쑥 일어나더니 저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니는 어떻고? 니는 지금 그 교회에 몸담고 있지 않나? 너나 잘해!”
한참 교회비판에 열을 올리던 저는 무안했습니다. 할 말을 잊었습니다. 창피했습니다. 정곡을 찔러 더 이상 할 말을 막아버린 그의 말은 너무 무자비했습니다. 그러나 옳은 말이었습니다. 아프고 부끄러웠지만 평생 약이 되는 충고였습니다. 두고두고 생각납니다. 두고두고 약이 됩니다.
나는 지금 어떤가? 내 코가 석잔데 남의 일을 가지고 열을 올리고, 내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노무현이 어떻고 부시가 전쟁을 어쩌고 하면서 국제정세로부터, 세계교회 일까지 걱정하는 자신을 봅니다. 그럴 때마다 이 말이 생각납니다.
자기문제를 깊이 보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남의 일에 관심도 많고 간섭도 잘합니다. 그 사람 구원받는가 못 받는가? 타종교에도 구원은 있는가 없는가? 그 모두 타당한 질문들이지만 자신은 문제 삼지 않습니다. 물음을 작게 자신에게 한정시키고, 더 치열하게 물어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고 있는가? 내가 정말로 은혜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가?
어차피 우리는 한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해도 내가 갈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밖에 없습니다. 몸은 하나인데 관심은 여럿이고, 가고싶은 길이 많다면 죽도 밥도 안됩니다. 내 길을 가야 합니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이 가게 그냥 놔두어야 합니다.
다만 내가 가는 길 함께 나눌 수는 있습니다. 정성껏 가는 내 길, 마음을 다해 믿는 내 구주 예수를 보고 혹시 그가 감동 받아 함께 가려 할지도 모릅니다. 내가 절박하다 해서 그 사람도 절박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좋은 것은 나누며 그뿐,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혹시 내가 잘못되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겸손하게 내게 주어진 길을 성실하게 갈 뿐, 가다가 그 사람 힘들어하면 손잡아 주고 등 토닥거려 주면 될 뿐. 토끼 두 마리 다 잡으려다 가랭이가 상하고, 토끼는 한 마리도 못 잡습니다.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이제는 한길로 시선을 고정시켜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말고, 앞만 향해 전심으로 달려가야 할 때입니다.
나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박노해)
그토록 애써온 일들이 안될 때, 이렇게 의로운 일이 잘 안 될 때, 나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뜻인가”
길게 보면 다 하늘이 하시는 일인데 이 일이 아니라 다른 일을 시키시려는 건 아닌가 하늘 일을 마치 내 것인 양 나서서 내 뜻과 욕심이 참 뜻을 가려서인가 “능인가”
결국은 실력만큼 준비만큼 이루어지는 것인데 현실 변화를 바로 보지 못하고 나 자신을 바로 보지 못해 처음부터 지는 싸움을 시작한 건 아닌가 처절한 공부와 정진이 아직 모자라는 건 아닌가 “때인가”
흙 속의 씨알도 싹이 트고 익어가고 지는 때가 있듯이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이루어지는 것인데 세상 흐름에 내 옳음을 맞추어내지 못한 건 아닌가 내가 너무 일러 더 치열하게 기다려야 할 때는 아닌가 쓰라린 패배 속에서 눈물 속에서 나는 나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홍석환 목사 (북부보스턴 한인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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