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 속의 부처 ‘우주의 사물놀이’

2006-10-1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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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뱅이 풍물인 사물놀이 패가 신들린 듯 한바탕 놀아난다. 미리 짜여진 악보도 없이, 어깨와 엉덩이를 들썩이고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꽹가리를 잡은 상쇠가 마른 하늘에 치는 캐갱캥캥 천둥번개를 신호로 비구름을 몰고 오는 검은 들소떼처럼 지축을 둥둥 울리는 북소리가 뒤따르고, 토닥토닥 장구 소리에 맞춰 파초잎에 듣기 시작한 빗방울은 어느새 장대비로 들창을 휘몰아치는데, 회오리바람같이 맴돌며 뼛속까지 징 징 울리는 징소리는 대지에 내리꽂히는 빗줄기의 대숲을 쓰러뜨리며 지진파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타악을 한다는 사람 치고 이렇게 사람들의 얼을 빼놓고 넋을 뒤흔드는 사물놀이를 모른다고 한다면 좀 고개가 갸웃거려질 만도 하지만, 호적에 오른 지 채 서른 해가 못 되는 이 사물놀이가 실은 한국의 절집에서 날마다 쓰는 사물에서 연유했음을 알만한 이들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규모가 있는 한국의 절에서는 네 가지 물건, 즉 사물을 가지고 아침 저녁, 날마다 예불을 시작한다.
그 첫 째가 쇠북, 곧 범종인데, 꼭대기 용머리 장식 옆, 수직으로 소리대롱이 달려 있고 바깥에 종방망이를 달아 수평으로 치는 한국의 범종은 세계적으로도 독특한 양식이다. 절의 행사나 위급 시에도 치지만 요즘 한국 절에서는 보통 아침에 스물여덟 번, 저녁에 서른 세 번을 치는데 역사적으로나 지역적으로 치는 순서나 숫자가 꼭 같지는 않다. 스물 여덟 번을 치는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스물 여덟 층의 하늘나라, 즉 28천을 뜻한다고도 하고, 마하가섭으로부터 달마대사까지의 28대 조사를 기림이라고도 하는데, 저녁에는 이 스물여덟 층에다 아래쪽으로 인간, 아수라, 축생, 아귀, 지옥까지 합쳐서 서른 세 곳에 있는 모든 중생과 넋을 달래고 부처님의 참된 목소리를 울려 퍼지게 하기 위해 서른 세 번을 친다. 예전에 서울에서는 아침에 파루를 서른 세 번, 저녁에 인경을 스물 여덟 번 쳐서 성문을 여닫았는데 별자리 숫자와 연관 짓기도 하지만 불교적인 연원을 부인할 수 없다.
다음으로 큰북을 치는데 이는 쇠가죽을 입혀 만든 법고이다. 특별한 행사에도 치지만 모든 가죽 가진 길짐승들의 고통을 어루만지고 넋을 달래기 위함이다.
그리고 구름판이라는 것은 청동으로 납작하게 만들어서 구름 문양을 새기거나 다듬은 판때기로서 운판이라고 하는데 공양시간을 알리는 데도 쓰지만 모든 날아다니는 날짐승들과 허공을 떠도는 넋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친다.
마지막으로 나무고기라는 것은 대개 종루에 큰 잉어처럼 매달려 있는 것으로 목어를 말함인데 물고기 몸에 용머리를 하기도 한다. 배 가운데 세로로 나 있는 긴 홈에 짧은 막대기 두 개를 세워 넣어 벽에 부딪치며 소리를 내는데 물속에 사는 모든 중생들을 보살피고 그 희생을 달래기 위함이다. 북방 불교에서 경을 읊을 때 쓰는 목탁은 이 나무고기가 다루기 쉽게 차차 작아지고 둥글어진 것이다.
동살도 트지 않은 고요한 산사의 이른 새벽, 홀연히 어둠을 가르며 뎅~뎅~ 북이 운다. 이어 기다린 듯 큰북이 둥, 둥 울면 따당 땅땅땅땅 구름판이 따라 울고 내쳐 따그락 딱딱 딱딱딱딱 나무고기가 운다. 저 까마득한 땅밑 지옥에서부터 아스라한 마지막 하늘나라에까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욕계, 색계, 무색계에 가득한 낱낱 청중들에게 멀리 멀리 울려 퍼지는 우주의 장엄한 사물놀이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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