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을산을 찾아서 단풍속으로…

2006-10-1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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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8,000~9,000피트 단풍 만개… 계곡따라 서서히 하강중

‘가을 산이 부른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고답적인가? 그러나 가을산은 여름산 보다 흡인력이 강하고, 겨울산 보다는 만만하다. 그래서 보통 때는 산행을 생각하지 않던 사람들도 옷깃에 와 닿는 바람이 선선해지면 “그래 산-”하며 새삼 산을 생각해 내곤 한다.
가을 산에는 산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은 부쩍 키가 높아져 있다. 그 하늘은 필경 몇 장의 흰 구름을 펼쳐 놓고 있다. 여름내 뻑뻑하던 공기도 가을에는 틈새를 좀 벌여 놓는다. 가을 산에 가면 숨쉬기가 한결 쉬운 것은 그 때문이다. 가을 산에는 무엇보다 일탈이 있다. 일상의 잡다함을 잠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 산에 단풍까지 있다면 보너스겠다. 하지만 계절 차가 밋밋한 LA근교에서 단풍 구경은 힘들다. 한인들이 자주 찾는 마운틴 볼디의 아이스 하우스 캐년만 해도 마찬가지. 나흘 전에 찾았더니 여전히 물소리는 콸콸거리는데, 잎들은 여전히 푸르거나, 단풍이 오르기도 전에 말라 비틀어져 낙엽으로 떨어져 있었다.
단풍을 찾아 지난주 비숍(Bishop)을 다녀왔다. ‘단풍하면 그래도 비숍’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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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숍 시내 비지터 센터. 정보의 보고이므로 반드시 들러볼 것을 권한다.


꼭 일주일 전에 찾아 본 비숍에는 애스펀(Aspen) 트리의 노란 단풍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차로 오를 수 있는 해발 8,000~9,000 피트 높은 지역은 단풍이 만개해 있었다.
단풍선은 계곡을 따라 서서히 하강 중이었다. 일주 전 상황으로는 해발 6,000~7,000까지는 아직 노란색 애스펀이 내려오지 않았다.
이 단풍이 얼마나 갈 것인가. 비숍 비지터 센터를 찾았더니 담당자도 자신이 없다. ‘어머니 자연’이 어떤 조화를 부릴 것인지 알 수 없단다.
그러나 현 상태로라면 예년의 경우에 비춰 이번 주말과 다음 주말까지는 단풍 구경이 무난할 것으로 예상한다. 서서히 낮은 곳의 애스펀도 노란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비숍 단풍은 헉, 숨이 막힐 정도로 압도적인 절경을 연출하지는 않는다. 빨간 색 단풍도 아니다. 초입부터 온 산이 단풍장관일 것으로 기대하지는 말아야 한다. 물론 군데군데 “참 좋다”는 생각이 드는 곳은 많다.
특히 사우스 레익 입구 쪽은 아름다운 가을 풍경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가을 산 아닌가. 가을 산에는 단풍만이 또 전부가 아님을 가을 산에 가면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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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숍 인근 가을산에 갈 때는 낚시 도구를 챙겨가는 것도 좋다. 비숍 크릭에서 플라잉 낚시로 무지개 송어를 유혹하는 꾼들도 있다.
산도 물도 사람도 가을물 흠뻑 들고...

애스펀 황색바다 건너 만년설 산봉 우뚝

비숍으로 출발

풀러튼에서 아침 6시30분 출발했다. 5번, 14번을 거쳐 395번을 타고 북상해 비숍 다운타운에 도착한 것은 정오. 300마일 정도 오는데 5시간30분이나 걸렸다. 출근길 트래픽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프리웨이를 타면 날아다니는 사람들은 4시간, 보통은 4시간30분 정도면 LA서 올 수 있다.
395번 프리웨이가 비숍 시내로 들어서면 메인 스트릿으로 이름이 바뀐다.
비지터 센터 주소는 690 N. Main St. 이곳에 가면 단풍·낚시·트레일 등과 관련한 모든 정보를 다 얻을 수 있다.
단풍을 보려고 흔히 가는 곳은 비숍 서쪽으로 20마일 정도 떨어진 사브리나, 노스, 사우스 레익 인근.
해발 4,100피트 정도인 비숍 다운타운에서 168번 웨스트를 만나 이스턴 시에라로 들어가면 고도가 금방 높아지면서 해발 9,000피트 정도인 3개 호수에 도착한다.
사브리나는 비숍에서 22마일, 노스는 사브리나 바로 앞에 있고, 사우스는 비숍서 19마일. 168번 웨스트를 타고 가면 길이 갈라지면서 왼쪽으로 빠지면 사우스 레익, 곧장 가면 상주인구 75명인 애스펀델(Aspendell) 마을과 노스 레익에 이어 사브리나 레익과 만난다.

사브리나 레익

해발 9,000피트, 백두산 천지 높이의 호수 주변에는 군데군데 애스펀 군락이 노랗게 물들어 있다.
가을꽃이 핀 것 같다. 짙은 초록빛 호수 사브리나와 노란 애스펀, 그 뒤로 펼쳐진 만년설의 산봉과 새파란 하늘과 흰 구름떼. 그곳에서 본 풍경들이다.
사브리나에는 보트를 빌려주는 사브리나 카페(커피등 음료와 간단한 아침·점심 식사도 가능)가 있다.
카페 오른쪽에 트레일(Inlet Trail) 입구가 보인다. 길이 1.5마일, 왕복 3마일에 불과한데다 공원 오솔길처럼 비교적 평탄해 걸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오솔길은 호수를 끼고 가면서 애스펀 숲을 지난다. 나무들은 키가 낮아 오히려 정겹다.
애스펀 노란 잎과 노랗고 투명한 가을 햇빛 속에 갇힌 산 속 오솔길. 걸어 본 사람은 그 맛을 알리라.
호수를 끝까지 끼고 도는 트레일이 없기 때문에 트레일 끝에서 갔던 길을 되돌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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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브리나 레익 애스펀 숲을 산책하는 한 등산객의 모습이 한가롭다.

붉은 단풍 계곡… 산이 타고 산을 탄다

노스 레익

사브리나에서 내려오다 노스 레익 팻말을 보고 왼쪽 경사길을 올랐다. 오른편 낭떠러지 아래로 펼쳐지는 계곡이 아찔하다. 계곡 곳곳이 노란 애스펀으로 덮여 있다.
주간용(Day Use) 주차장이란 팻말을 무시하고 호수 왼쪽을 끼고 도는 길을 따라 끝까지 들어가면 캠프장이 나오고 거기서 길이 끝난다.
들어가면서 길가에 줄지어 선 애스펀 단풍이 볼만하다. 3개 호수 중 유일하게 이곳에서 주홍, 혹은 빨간색 애스펀 단풍을 볼 수 있다. 평일인데도 사진 촬영에 열심인 동호인이 꽤 여러 명이다.
왜 이곳의 일부 애스펀만 빨간색 단풍인가. 나이 지긋한 미국인 부부에게 물었다.
부인은 “미네랄 때문”이라고 했고, 남편은 “광선에 따라 색깔이 크게 달라 보이기 때문일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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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숍 인근 노스 레익 왼쪽으로 돌아가면 드물게 붉은 색 애스펀 단풍도 볼 수 있다.

사우스 레익

나오는 길에 가장 나중에 들렀다. 그러나 가장 먼저 가 볼 것을 권한다.
단풍이 가장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이 곳 단풍은 질과 양 모두에서 사브리나와 노스의 단풍을 압도했다. 게다가 이 일대는 계곡이어서 어스름이 일찍 밀려오므로 단풍을 즐기려면 한 낮에 가는 것이 좋다.
사우스 레익 가는 길에서 가을 산에 온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개울과 함께 펼쳐진 레익 진입로는 절경을 이룬다. 도대체 차를 타고 달릴 기분이 아니다. 시골길 같은 포장도로를 따라 끝없이 걷고 싶은 곳-.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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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데군데 군락을 이뤄 장관을 연출하고 있는 비숍 인근 이스턴 시에라의 가을 단풍.

덧붙이는 말

아침에 떠나면 하룻길… 두툼한 옷 준비를

독자들은 일주 전 단풍상황을 읽는 것이다. 지금은 약간의 차가 있을 수 있다. 정확한 단풍정보(fall color update)는 비지터센터에 물어보면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전화 760-873-8405, www.BishopVisitor.com)
LA에서 아침 5~6시 출발하면 일일‘단풍여행’은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가을산행 맛을 느끼려면 비숍 시내 모텔이나 사우스 레익쪽 Parcher’s Resort(전화 760-873-4177), Bishop Creek Lodge(760-873-4484)나, 사브리나 레익쪽 Cardinal Village Resort(760-873-4789)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적당한 트레일을 택해 하이킹을 하는 것이 좋다.
이들 캐빈은 대부분 10월중에 문을 닫는다. 한 낮에도 두툼한 재킷과 긴 바지가 있어야 한다. 장갑과 모자를 준비하는 것도 호들갑이 아님을 알게 된다. 호수 주변만 해도 해발 9,000피트가 넘으니까.
참, 비지터 센터 바로 건너편 빵집 Erick Schat’s Bakery는 자기들 선전대로 ‘세계적으로 유명한’곳은 아닐 지 몰라도 널리 알려진 빵의 명소. 현재 밥과 빵 등을 먹지 않는 탄수화물 다이어트 중이 아니라면 한 번 들러볼 만 할 것이다.

글 안상호·사진 진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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