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양떼를 치며 ‘나도 당신처럼…’

2006-10-0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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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피곤해도 보람있는 여행이었습니다.
지난주에 우리 교회가 선교하고 있는 중국의 연변자치주 안의 여러 곳 중에, 용문초등학교를 찾기 위해 우리 단기선교 팀은 무려 18시간을 비행기와 차로 이동하였습니다.
얼핏 보아서는 평화롭기 짝이 없는 시골학교에는 온전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집이 별로 없었습니다. 젊은 엄마들은 돈 벌러 한국으로, 또 미국으로 떠나고, 대부분의 아버지들도 농촌을 버려, 그래서 깨어진 가정을 대부분 조부모들이 꾸려가고 있었습니다.
한때는 300명 정도의 학생들이 있었던 교정에는 7명의 학생들만 덩그러니 남아 수업을 받고 있었습니다. 수업 후에 가정을 방문했을 때, 손자, 손녀를 키우던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부끄럽게 내미는 학자금을 받아들고는 어쩔 줄 모르고 고마워하며, 언젠가 “나도 당신처럼” 남을 도우며 살겠노라고 다짐했습니다. 평생 농사 지으며 사신 그 할머니의 모습 속에는 얼마 전에 돌아가신 저의 큰어머니의 모습이 담겨있었습니다.
연변 조선족의 대부분은 우리나라가 어지럽고 일본사람들의 횡포가 심해질 때, 북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 조국의 독립을 위해 삶을 던졌던 조상들의 자손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미국에 사는 조선족이고, 그들은 중국에 사는 조선족인 셈입니다. 한국인이라고 하든, 조선인이라고 하든, 함께 나눈 역사를 가지고 서로가 기대어 살아야하는 민족인 것입니다. 우리 틈에 끼어 험한 일을 하며 살아가는 조선족을 두고 미국에 먼저 온 조선족이 하대하거나 무시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독일 신학자 중에 칼 라너(Karl Rahner)라는 분이 ‘얼굴 없는 기독교인’(Anonymous Christian)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입으로는 “예수, 예수”하며 막상 그의 삶과 인격이 없는 사람과, 예수를 알지 못하면서도 그의 삶을 닮은 사람을 두고 생각을 정리한 것입니다. 물론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며, 그의 삶의 모습도 함께 자신의 삶을 통해 담아내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그러나 해맑은 모습으로 손자를 돕고, 위해서 기도하는 우리를 보고 “나도 당신들처럼 남을 위해 살겠노라”고 다짐하는 할머니의 모습 속에는 이미 그리스도의 형상이 담겨있었습니다.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믿음이 아직은 없어도 말입니다.
선교는 선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삶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먼저 겸손한 마음으로 듣고 그 다음 말하는 것을 우리는 거룩(聖)이라 합니다. 전도는 우리만이 알고 있는 예수code를 그들로 하여금 우리처럼 되 뇌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하는 것입니다.
중국 인민공화국의 시골학교에서 올린 우리의 기도는 나의 큰어머니를 닮은 할머니의 “나도 당신처럼”이라는 말씀으로 이내 응답되었습니다. 파리 들끓는 그 조부모님의 방 창문 너머로 늦여름의 옥수수는 여전히 싱그러워 보였습니다.

<곽 철 환 목사 (윌셔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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