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스턴트 교회

2006-09-2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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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 한국이 IMF로 경제가 격동하고 있을 때 방문했던 경험이다.
덕수궁 옆 성공회 수녀원 피정의 집에 짐을 풀었기 때문에 가까운 서울역을 걸어서 갈 수 있었다. 목적은 지하철 홈리스들을 찾아보려는 것이었다. 홈리스들은 서울역 대합실 귀퉁이 TV세트가 있는 곳에 많이 모여 있었는데 장기를 두는 곳에서는 훈수를 재미있게 하고 있었다.
저녁이 되자 이동하는 그들을 따라 지하철 계단 밑 평지에 신문지를 깔고 모여들고 있는 곳에 갔다. 한 곳에는 소주를 놓고 서너명이 대화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아직 깨끗한 옷을 입고 있었다. 여러 가지 말을 나누는 동안에 직장서 실직되어 집을 나온 지 두어 달이 되었다 하였다. 그들은 가장으로 역할을 못하여 서울에 가면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하고 올라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어울려 자고 있었다.
차차 나의 신분이 나타나자 당장 목욕도 하고 면도도 해야겠으니 돈 좀 달라는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교회의 도움도 인스턴트적인 전시성 일회용으로밖에 보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있는 돈을 다 털어 나눠주고 씁쓸히 그곳을 떠난 기억이 있다.
인스턴트의 뜻은 즉각, 순간, 현재, 탄원, 소송, 찰나, 즉석 등 여러 가지 뜻으로 사전에 나와있다. 그러나 인스턴트 하면 첫 번째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가공된 인스턴트 식품을 생각게 한다. 한국에 있을 때 광주에서 서울 신학교에 출강하고 돌아오면서 논산인가 하는 곳의 고속도로 변 간이식당에서 먹던 컵 라면이 얼마나 맛이 있었던가?
이같이 오늘의 교회가 일회용 즉석 인스턴트의 교회로 보이는 것이다. 먼저 인스턴트 교회로 수정교회(?)가 보인다. 웅장한 건물, 기분 좋은 분위기, 즐거운 음악, 자극 없는 달콤한 설교, 도전 없는 성경해석, 살빼기 에어로빅, 재정관리, 탁아소 프로그램, 이민 정보교환 등등이 나타날 때는 찰나적인 토크쇼로 스테디엄 교회도 보인다.
여기서 2,000년 교회사에서 예수님의 초상을 스테인드글래스에서 찾아본다. 비잔틴 시대에는 두 손의 못 자국을 보여주는 예수님 상에서 죽음을 넘어선 소망이 있었고, 황금 법복을 입은 중세의 예수님 상은 죄인들을 무릎 꿇게 하였고, 어린양을 품고 있는 목자상은 경건주의 신앙을 보여 주었는데, 오늘의 교회는 일년도 못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풍자적 초상에 호산나 랩(Rap music)으로 춤을 춘다. 이때 가스펠 송에 손뼉을 치고, 춤을 추며, 찰나적인 일회용 즉석 인스턴트 식품과 같은 값싼 복음이어서인지, 교회 문 밖에 나오면 잊어버린다.
여기에서 다시 한번 비잔틴 시대의 가시관으로 피범벅이 된 예수님의 초상을 스테인드글래스에서 찾아 예배의 핵으로 봉사하려 한다.
이 예배가 시작된 초대교회의 설교는 예수 그리스도 논에 변증적 순교였고, 만찬상의 ‘살과 피’는 인스턴트 식사가 아니고 생명의 양식이다. 그래서 이 성찬예배는 인생에 투쟁하는 것이었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이요, 포로된 자들에게 해방이며, 억눌린 사람에게 자유를 주는 면제년이었다는 말이다.

김 경 덕 신부
<성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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