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작은 실천

2006-09-1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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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온 지 두주가 되어서야 겨우 피곤이 풀린다. 그날 아침 뉴스에서 캄에어(Comair) 항공사의 사고 보도를 보고 있는 중 전화벨이 울렸었다. 본사 모처로 곧 출동하라는 것이었다.
급히 여행가방을 꾸려 지정된 곳에 도착하니 이미 특별기에 사람들이 오르고 있었다. 그래서 전화를 받은 지 두시간 만에 애틀랜타를 이륙했고 정오가 되기 전에 렉싱턴(켄터기주) 현장에 도착했다.
내가 일하는 회사와 캄에어는 같은 모회사 델타 항공의 직계회사로서 나는 사고가 발생할 경우 피해 승객의 가족을 돕는 모회사의 요원으로 자원하고 훈련받은 바가 있다. 델타의 가족돕기 팀은 규모가 잘 짜여있는 것으로 항공업계에 알려져 있다. 현지에 팀이 파견되는 한편 애틀랜타의 본사에도 지원 본부가 구성되어 서로 효과적으로 협력해 가족을 돕는다.
이런 조직이 구성된 지난 십여년간 다행히 델타 항공의 사고는 한 건도 없었으나 8년전 제휴사인 스위스 항공의 사고가 캐나다에서 발생했을 때 먼 거리에 있는 스위스 항공 사람들을 대신해 유가족들을 도운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자회사에서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
비보를 듣고 유가족이 몰려오는 캠벨 하우스 호텔에 본부를 설치하고 한가족씩을 배당 받았다. 나도 한 가족을 배당 받아 미망인에게 전화를 했다. 델타 항공사의 가족 돕기 요원 아무개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항공편이나 지상교통편, 호텔 예약등 무엇이든 필요한 것을 주선해 해결해 드리겠다고 내 역할을 설명했다. 비극을 당한 가족과의 첫 전화는 그리 쉽지 않았다. 미망인은 여러번 대화를 중단하고 흐느꼈다.
전화 외의 가족과의 접촉은 주로 교통안전국(NTSB)의 브리핑을 전후해서 이루어졌다. 50명 피해자의 가족들과 같은 방에서 브리핑을 듣는 것 역시 힘든 일이었다. 한사람의 장례식에 참석할 때 한가족의 오열을 지켜보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그 50배의 오열을 지켜보며 감정에 극복되지 않으려면 초인간적 힘이 필요했다.
“탑승자들이 어느 시점에서 사망했습니까? 저의 어머니가 얼마나 고통스럽게 돌아가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비행기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시신들이 기체 내에 있습니까, 밖에 흩어졌습니까?” 첫 브리핑의 질문들이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졸지에 잃은 유가족의 입장에서 회사와 당국을 비난하고 욕을 하고 고함을 질러도 다 이해를 할 판인데 감정이 격해 언성이 다소 높아지는 것도 한두 사람에 불과하고 대개는 사실을 더 잘 알려고 조용히 이성적 질문을 한다.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간간이 나는 것이 더욱 분위기를 숙연히 할뿐이었다.
두번째 날의 브리핑에는 카운티 검시관의 보고가 있었다. 자기 직원의 누이가 탑승객이어서 자기도 이 사고에 개인적으로 연관되었음을 설명했다. 자신도 장의인인 입장에서 장례시 관을 열지 못할 것으로 안다고 하자 흐느끼는 소리가 더욱 커졌다.
가족 돕기 요원을 출동시키는 회사의 목적은 어려움에 처한 유가족에게 편의를 베풀자는 것이지 친절을 베풀어 피해소송을 면해보려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내 역할도 가족의 물질적 필요를 충당해 주는 것이지 정서적이나 신앙적 상담이 아니었다. 내 개인의 목적도 슬픔에 잠긴 가족을 위한 봉사를 하는 것이지 그 기회를 이용하여 전도를 하자는 것이 아니었다 .
내가 있어 좀더 좋은 사회와 세계가 되어야 한다는 나 자신의 신앙에 작은 실천을 한 것뿐이다. 내가 입밖에 내지 않았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이 가족들에게 전해졌을 것을 믿는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앞으로의 삶에 하나님이 동행하실 것을 간원한다. 나로 인해 애통하는 가족들의 마음에 다소간 위안이 되었기를 바란다. 그리고 앞으로는 사고로 출동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phosalethinon@gmail.com
김 영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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