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움직이는 동상’의 거리 라람블라

2006-09-1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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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와 화원과 파머스 마켓이 어우러진 바르셀로나의 명동

새벽까지 거리 인파

라람블라(LA RAMBLA)는 바르셀로나 다운타운을 가로지르는 큰길로 서울의 명동, 뉴욕의 타임스퀘어 비슷한 곳이다. 관광객들이 바르셀로나에 오면 우선 쏟아져 나오는 거리로 차량통행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행인의 천국이다. 라람블라는 원래 꽃가게 거리로 유명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카페와 햄버거샵, 옷가게 등이 줄지어 있고 바르셀로나의 대표적인 농수산물 시장인 보케리아 마켓도 이 곳에 자리잡고 있어 주부들까지 몰려와 사람에 항상 북적거린다. 피카소 박물관도 이 근처에 있는데 항상 아침부터 관광객들(사진)이 문 열기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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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인가, 사람인가” - 고대 카탈루니아 여신으로 분장한채 꼼짝않고 있는 거리의 인간동상을 관광객이 신기한 듯 들여다 보고 있다. 돈을 놓으면 동상이 움지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라람블라의 명물은 ‘인간 동상’이다. 동상처럼 분장한 사람들이 꼼짝 않고 거리에 서 있는데 행인들이 돈을 놓으면 움직이기 시작한다. 파리의 루브르박물관 앞에서도 볼 수 있지만 라람블라는 ‘인간 동상’이 완전히 거리의 장식처럼 줄지어 있고 분장기술이 예술적 수준이다. 밤에도 여인 동상들이 길거리에 서있는데 공짜로 보고 지나치기가 민망해 으레 동전을 놓게 되어 있다. 수입도 상당해 “이건 구걸이 아니라 당당한 비즈니스로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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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로 분장한 동상.

꿀 있는 곳에 파리가 끼는 것처럼 관광객이 많은 곳에는 소매치기가 들끓게 마련이다. 라람블라 관광 안내서 끝에는 “소매치기를 조심하세요”라는 단서가 꼭 붙어 있다. 라람블라 입구에 ‘취리히’라는 유명한 카페가 있는데 관광객들이 사진 찍을라치면 말끔하게 차려입은 청년이 다가와 “가족이 함께 서세요. 내가 한 장 찍어드릴게요” 하며 친절을 베푼다. 이때 카메라를 주면 뒤로 물러나 거리를 조절하는 척하다 줄행랑을 놓는다고 한다. 라람블라에서는 사진 찍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하면 점잖게 사양할 일이다. 우리 일행 중 한 사람도 하마터면 당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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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람블라 거리의 밤 카페. 더위가 심해 시민들이 밤거리로 몰려 나온다.

라람블라를 따라 30분쯤 내려오면 바닷가가 나오는데 이 곳이 먹거리 동네인 ‘발세로네타’다. 고급 레스토랑에서부터 대중음식점에 이르기까지 골목마다 식당들이 몰려 있다. 이 곳에 있는 레스토랑들은 해산물로 유명하지만 우리가 카탈루니안 메뉴판을 읽을 수 없는 것이 결정적인 취약점이다. 웨이터가 알아서 갖다주는 ‘묻지마 메뉴’도 있는데 1인당(디너) 50달러 정도 잡으면 그럴듯한 접시들이 나온다. 와인 애호가들에게 희소식은 이 지역이 스페인 포도주 명산지 중의 하나로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와인이 비싸지 않으면서도 맛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35달러 정도면 괜찮은 와인을 마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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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등 밑에 서있는 이 남성의 가슴에 찬 시계는 정확한 시간을 가르키고 있다.

바르셀로나의 특징은 마드리드나 세비자(세빌리아)와는 달리 가이드 없이도 충분히 혼자 관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라람블라가 시작되는 광장이 바로 카탈루니아 광장인데 이 곳에 가면 바르셀로나 관광명소만 돌아다니는 2층 버스가 있다. 27달러 주고 ‘2일 패스’를 사면 자유롭게 버스를 오르내리면서 시내관광을 마음껏 할 수 있어 편리하다. 버스에서 관광지 안내방송이 영어로 자세히 나온다. 시큐리티도 안전한 편이라 밤거리를 구경할 때 느끼는 불안감 같은 것도 없다. 바르셀로나는 덥기 때문에 밤 9시에 문을 여는 레스토랑이 많으며 새벽 2시까지 라람블라 일대는 인파가 끊이지 않는다.

이 철 <이사>
c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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