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 속의 부처 그 다방에 들어설 때에

2006-09-0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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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이 짙푸르던 그 해 여름, 유리창이 넓은 서울의 그 다방에 그 때 내가 들어섰던 것은 하느님이나 조상신이 있어 무슨 목적에서 나를 그리로 들여보내셨기 때문일까? 문을 열 때 내 가슴이 긴장하며 뛰고 있었던 것은 이 우주의 모든 물질적 시간적 조건이 오래 전부터 작용하여 내 심장의 좌심방 우심실이 완벽한 박자를 맞춰 정확히 그 정도로 바삐 뛰도록 미리 예정되어 있었던 것일까? 거기 그 여자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자리를 잡고 기다린 것은 혹시 단순한 우연들이 겹쳐진 무미건조한 행위의 연속일 뿐이었을까? 그 기다림조차 꿈결처럼 감미로웠던 것은 나와 그 사람의 수많았던 전생의 업이 이미 그럴 수밖에 없는 이생의 운명에 달콤한 색칠을 해놓았기 때문이었을까? ‘그 다방에 들어설 때에’하며 까닥까닥 흔들며 입맞추어 노래하던 예쁜 그 자매 가수 중 하나가 뒷날 어느 재벌 총수의 아내가 되었다가 헤어진 것은 필연일까, 우연일까?
그런데 그 옛날 인도에서 브라만 교의 권위가 무너지고 신흥 사상이 우후죽순 같이 일어났을 때도 한다 하는 사상가들이나 종교가들이 이런 문제를 단골 메뉴로 삼아 혼돈을 부채질하였는데, 부처님은 그 당시 영향력이 컸던 여섯 갈래의 그릇된 학파를 비롯하여 여러 견해들을 크게 셋으로 뭉뚱그려 그 잘못을 비판하셨다.
그 첫째는 이 우주와 인간을 신이 창조하고, 모든 일을 신이 알아서 조작한다는 존우론이다. 내가 지금 이 글을 끄적이는 것도, 당신이 글줄을 따라 눈동자를 움직이는 것도 다 신이 하는 일이며, 좋든 나쁘든 착하든 악하든, 설사 당신이 지금 갑자기 옆에 놓인 막대기를 들어 아무나 내리치더라도 그건 신의 뜻이지 당신의 의지가 아니다. 결국 신에게 모든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데, 온갖 참혹과 고통이 끓어 넘치고 엉망진창인 이 세상을 대충만 훑어보더라도 일신교든 다신교든 이러한 신들은 가히 영겁의 참회로도 그 잘못을 다 씻기가 어려울 성싶다.
다음은 모든 것은 물질적으로나 기계적으로 이미 그 결과가 확실히 결정되어 있다든가 전생의 업으로 이생의 모든 운명이 이미 빈틈없이 예정되어 있다는 숙작인론인데, 이렇다면 당신이 책임 질 틈바구니가 또한 전혀 없어진다.
마지막으로는 이렇든 저렇든 모든 게 다 우연이라는 무인무연론인데, 내가 사람을 죽여도, 내 목에 칼날이 지나가도 다 우연일 뿐, 그야말로 케 세라세라 될 대로 되라지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니게 된다.
이 세 가지가 아니라면 나는 왜 그 때 그 다방에 들어섰을까?
우선 신과는 아무 관련을 찾을 수 없다. 여자를 찾을 생물학적 사회적 나이가 되어 이러저러한 행동을 하게 된 것은 추정할 수 있으며 나를 비롯하여 관련된 사람들의 전생들이 영향을 미쳤겠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삼라만상이 연기의 법칙에 따라 여러 차원에서 동시에 연쇄적으로 작동하며 주고받아 나타난 겉모습이 운명이나 우연의 연속인 것처럼 보이는 혼란스런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고리와 고리 사이에는 내가 움직이는 나의 마음과 의지가 있었다. 잘 알기 힘든 여러 요인과 영향력, 우연처럼 보이는 여러 선택사항이 있었겠지만, 나는 그 다방에 아예 가지 않을 수도 있었고 금방 뛰쳐나올 수도 있었으나, 사나이가 기다릴 때까진 기다려 봐야지 하고 기다리다가 그만 코가 꿰여 한 가정을 이루고 말았다.

이 원 익
(태고사를 돕는
사람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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