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와이드 인터뷰 ▶‘하늘에 속한 사람’ 윈형제

2006-09-05 (화)
크게 작게
한인교회 뜨거운 성령 역사
복음 전파로 사명 감당해야

‘하늘에 속한 사람’을 ‘땅’에서 만났다. ‘복음 마을’이 거주 주소라고 말했던 리우전잉(劉振營·48)이 LA를 찾았던 8월31일이었다. 본명보다는 윈(雲)형제로 더 많이 불리는 그에게 던진 첫 질문은 “독일에 사는 지금도 여전히 당신은 ‘하늘에 속한 사람’이라고 답하는가”였다. “그렇다. 나뿐만 아니라 크리스천 모두가 똑같이 대답하기를 바란다. 그건 기독교인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다. 세상 사람과 만났을 때 정체성을 잊어버리면 기독교인의 향기가 안 나기 때문이다.”

복음이 전파될때 표적과 기사
서양교회도 성경으로 돌아가야
중국 복음화 가정교회 세워야


그는 베스트셀러 ‘하늘에 속한 사람’을 썼다. 제목에 얽힌 사연은 이렇다.
1983년 12월17일, 중국 허난성 우양. 중국 제도권 교회인 삼자교회 가입을 거부한 가정교회의 지도자인 그가 3일간 집회를 마쳤을 때다. 사회주의 정신을 갉아먹는 불온분자를 색출하려는 공안원들이 들이닥쳐 그를 잡았다. 몽둥이가 벼락처럼 떨어졌다.
“네 이름이 뭐야? 너랑 같이 온 놈들은 어디 있어? 어서 불란 말이야!”
“나는 하늘의 사람입니다! 주소는 복음 마을입니다! 사람들은 나를 새벽별이라고 불러요! 우리 아버지 이름은 풍성한 복이고, 어머니 이름은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믿음의 동역자를 ‘팔지’ 않기 위해 그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한 말이다. 그 대가로 그에게 돌아온 건 방망이, 전기봉 세례에 ‘뒷간 수영’이었다. 잇따른 74일간 금식은 믿음을 지킨 ‘훈장’이었다.
―LA 한인교회는 첫 방문인데, 첫 인상은?
“한인교회에 뜨거운 성령의 임재를 느낄 수 있었다. 기도의 불 속에 사는 것 같다. 미국 내 중국계 교인들이 ‘미국을 변화시키는 힘은 한인교회의 기도’라는 말을 많이 하던데, 사실임을 깨달았다. 한인교회처럼 아침 일찍 교회에 모여 새벽기도를 하는 곳은 보지 못했다.”
―세계 곳곳을 다니며 간증을 하는데, 최근 근황은?
“일년에 반 이상은 세계를 누빈다. 지난해 10월 방한 후 독일 정부에서 독일 거주민은 독일어를 익혀야 한다고 통보했다. 그래서 올해는 유럽 밖으로 처음 나왔다. 일주일 전 독일어 연수 코스를 우수한 성적으로 마쳤다. 이제 독일어로 일상 대화나 기도는 할 수 있어 백인 사역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당신이 당했던 것만큼 잔인한 종교탄압이 벌어지고 있나?
“종교 핍박은 1949년 중국 공산당 정부 수립 이후 끊임이 없다. 다만 전국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게 아니라 탄압이 이 도시, 저 도시를 옮겨다닐 뿐이다. 내 책에 추천사를 쓴 중국 팡청 가정교회 지도자인 장롱량 형제는 지금도 7년 넘게 수감돼 있다. 그 기간 그의 아내는 단 한번도 면회를 못했다. 2주 전 통화한 한 중국 내 기독교 지도자는 ‘한 감옥에는 기독교 지도자 60명이 수용돼 있다’고 전했다.
―독일로 탈출한 뒤 중국에 어떻게 복음을 전하고 있나?
“중국 정부는 성경 3,000만권을 직접 인쇄해 보급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그걸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중국에 책 읽을 줄 아는 모든 사람에게 성경을 보급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또한 중국 사람은 예수님을 접하는 방식이 서양과는 다르다. 중국은 교회로 신도를 불러모으기 힘들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 그래서 가정 단위 교회가 중요하다. 가정 교회를 제대로 세우기 위해 해외에서 노력하고 있다.

윈 형제를 말할 때 탈옥을 빼놓을 수 없다. 기적이라는 말밖에는 설명할 단어가 없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1997년 5월5일을 무성 형제는 이렇게 전한다.
『아침 7시 일을 하고 감방으로 돌아오던 중 윈 형제가 걸어나가는 게 아닌가!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불구가 되었다는 것은 감옥 안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사람이 걷는 것을 보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그의 두 다리는 무자비한 구타로 인해 완전히 상해 있었다. 나는 감방 유리창으로 기어올라가 그가 마당을 가로질러 정문을 통과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 시각 마당에는 서른 명 가량의 간수들이 있었지만, 아무도 윈 형제가 나가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심지어 윈 형제는 몇몇 간수들 사이를 뚫고 지나가기까지 했다.』(책 299페이지)
―일부에서는 탈옥을 비롯해 당신이 겪은 고난이 상당히 과장된 게 아니냐 의심한다. 또는 신비한 체험을 너무 과시하는 이단 성향을 보인다고 말하는데.
“나에 대한 사람들의 판단에 일일이 신경을 안 쓰려고 한다. 예수님을 몇 년간 따라다닌 제자들도 예수님을 의심했는데 하물며 나는 어떻겠나. 내 고난을 간증하는 것은 나를 믿게 하려는 게 아니라 예수님과 하나님을 믿게 하려는 것이다. 사람의 말에 일일이 반박하면 은혜가 안 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중국에는 표적과 기사와 기적이 참으로 풍성하게 일어나는데, 서양에서는 그다지 활발하게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서양인은 가진 게 너무 많다. 각종 보험이 삶을 보장해준다. 그러니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가진 게 없었던 우리 가족은 아버지가 위암으로 사경을 헤맬 때 치료비가 없어 하나님께만 기댔다. 자비로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아버지를 고쳐주셨다. 하나님은 어떤 것도 하실 수 있다는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자 많은 기적이 일어났다. 나는 표적과 기사를 따라다니도록 부름을 받은 게 아니다. 복음이 전파될 때 표적과 기사가 우리를 따라다닌 것이다.”
―한인과 서양 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나?
“세계 교회 모두가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주일에 잠깐 교회 온 것만으로는 크리스천의 삶을 살기 어렵다. 그러려면 사도들이 강한 성령의 임재 속에 교인들을 치유해야 한다. 그럼 영적 파워가 생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능력이 생긴다.
―한인교회에서 한 당신의 간증에서 핵심은 무엇인가?
“한인 2, 3세 기독교인에게 강한 도전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한인만의 문화를 뚫고 나와 기독교 정신을 회복하라는 뜻이었다. 목숨 걸고 주님 뜻에 따라 살라고 강조했다. 살아있는 교회가 되려면 교회 안에서 교인끼리 모여 있어서는 안 된다. 세상 어디에서라도 복음을 전도해야 한다. 한인교회가 성령의 뜨거운 역사를 감당하기를 당부했다.”

중국정부 투옥·고문속 전도자의 길

윈 형제는...

1958년 중국 허난성의 한 농촌에서 태어났다. 74년 부친의 기적적인 암 치유를 보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복음 전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가정교회를 탄압하는 중국 정부의 극심한 박해 속에 30회 이상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했다. 어용 기독교 단체인 삼자애국운동 가입을 거부해 84년 처음으로 투옥됐다. 잔인한 폭행 속에서도 74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며 금식기도를 했다. 91년 2차 투옥에 이어 96년 가정교회 연합체인 시님연합 창립을 주도한 혐의로 97년 세 번째로 감옥에 갇혔다. 두 달 후 기적적으로 탈옥한 뒤 독일로 망명했다.
현재 독일에 근거를 두고 세계를 순회하며 중국교회의 선교 비전인 ‘백 투 예루살렘’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글 김호성 기자·사진 진천규 기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