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매킨리 등반기 <4>

2006-09-0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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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30도 헤드월의 눈폭풍

에델바이스 산악회 원정대 유재일 대원

바람에 떠밀린 두대원 크레바스서 구사일생


Day 8 6월2일
어제 캠프-3(모터사이클)에 늦게 도착해서 인지 모두들 늦은 시간에 일어나서(10:00) 아침식사 후 천천히 짐을 꾸린다. 스키와 무거운 압력밥솥, 식량을 C3에 데포(cache)를 하는 중에 어제 정상 등정을 했다는 바우산악회 등반대를 만나(11:42) 산행 정보를 들으면서 그들이 쓰고 남은 식량과 차를 얻고, 같이 기념촬영을 하고 나니 모두들 짐을 다 꾸렸다며 출발을 한다(12:19).
윈디 코너를 지날 때는(16:07) 하산을 하고 있는 경기연맹팀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1만4,000피트 데포 지점에서야 앞서서 가고 있는 외국 등반대를 추월해 어제 우리가 짐을 데포한 매킨리시티 캠프 사이트에 도착했다.(18:19)
짐을 내려놓고, 앞에 턱 허니 버티고 있는 하얀 수직 설사면 헤드월을 올려다본다. 헤드월은 그리 만만치가 않아 보여서 고개가 아프도록 올려다보고 또 쳐다본다. 하늘높이 치솟아 있는 웨스트 버트리스(West Butress)도 결코 호락호락한 능선이 아닌 거대한 병풍과 같은 암벽의 장벽이다. 매킨리시티에서 헤드월을 거쳐, 웨스트 버트리스(West Butress) 절벽 능선을 따라서 3,000피트를 올라가야 하이 캠프가 나오고, 하이 캠프에서 데날리 패스를 거쳐 다시 3,000피드를 더 올라가야 정상이 나온다.
오른쪽에는 고 고상돈씨가 등정 후에 추락사고를 당했던 웨스트 립(West Rim)이 가깝게 남서쪽으로 뻗어내려 있고 뒤로 거침없이 모습을 드러낸 매킨리는 생각보다 더 아름다웠고 웅장했다. 계속 매킨리 정상을 올려다보지만 매킨리는 낯을 붉히며 하얀 구름 사이로 웅장한 자태를 순식간에 감춘다.

Day 9 아침에 일어나니 바람은 잦아들고 하늘은 맑았다. 텐트 앞에서 보이는 헤드월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헤드 월을 오르는데 보통 3~4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마지막 500m 구간은 고정 로프 설치구간으로 주마(밀면 앞쪽으로는 움직이지만, 뒤로는 안 밀리는 암벽등반 장비)를 해야 한다고 하며, 데날리 등반에 가장 난이도 있고 체력을 요하는 구간이라고도 한다.
아침부터 헤드월을 향해서 줄지어 올라가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는 식량과 장비를 하이 캠프로 직접 운반하기보다는 다른 팀들과 마찬가지로 헤드 월 위의 새들 설벽 적당한 곳에 파묻고 내려올 계획을 세운다.
하이 캠프에서 5일 동안 먹을 식량과 장비를 챙겨 안자일렌(동료끼리 자일로 서로 연결하여 상호간에 확보와 안전을 꾀하는 것)을 하고 헤드월을 향해서 출발을 한다.(12:57) 내가 선두에 서서 천천히 운행을 했지만 모두들 피곤한지 시간이 많이 지체된다. 헤드월 하단의 설 사면은 보기보다 급경사여서 희박한 공기 속에서 매우 힘들게 올라가야 했다.
세 군데의 크레바스가 있었지만 완다(표식기)로 표시해 놓은 길을 따라서 올라가기 때문에 그다지 위험하지는 않았다. 칼로 쳐 내린 듯한 얼음 절벽 크레바스가 입 벌린 빙탑에 이르렀을 때는(16:02) 모든 사람들이 거의 한 줄로 늘어섰다. 이곳에도 트래픽이 있었다.
이제부터는 주마를 이용하여 올라가야 했기에 아이섹스를 꺼내고 휴식을 취하며 간식을 먹었다. 헤드월의 상단은 길이가 500m쯤된 설벽으로 길이가 좀 길고 경사가 50도가 넘는 가파른 빙벽이었다. 이 곳에는 레인저들이 설치한 고정 로프가 2동이 설치돼 있었다.
사면의 오른쪽은 등반용 고정 로프이고, 주황색의 왼쪽 것은 하강용이었다. 모두들 올라갈 생각은 안하고 쳐다만 보고 있기에 이 빗장을 풀고 올라가야 된다는 마음에 “자! 출발합시다”라고 소리치며(16:19) 선두로 올라가며 주마링하는 방법을 큰소리로 알려주었다. 자일에 주마를 걸고 확보 줄에 연결된 카라비너(너트 등과 로프를 연결할 때 중개물로 쓰이는 금속제 쇠고리 모양의 용구)를 주마 앞에 걸고 오르라고 큰 목소리로 대원들을 안심을 시키며 앞장서서 올라갔다.
빙벽은 단단히 얼어 있었기에 처음에는 추락의 공포 때문인지 모두들 몇 번씩 클렘폰으로 빙벽을 차며 확인들을 하고 발을 옮기고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손에 힘을 주며 매달려 있기에 계속 그렇게 하는 것은 체력과 시간을 소비하는 행동이라 나를 보라며 두 팔을 벌리고 주마에 매달려 장비를 믿으라고 고함을 치며 보여주니 미끄러져서 떨어져도 안전하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공포감이 없어진 덕분인지 모두들 잘도 올라온다. 주마를 위로 올려 로프에 매달렸다, 체중을 풀고 급사면을 크렘폰으로 차고 오르는 반복을 무려 세 시간이나 걸리는 힘든 등반 끝에 헤드월 상단에 올라섰다.(19:05) 헤드월은 사진에서 본 것과 같이 암벽 설릉으로 굽이굽이 이어지는 칼날 같은 설사면 능선으로 신비스러웠다.
많은 사람들이 식량을 데포해 놓은 표식기가 이곳 저곳 산재해 있었고 반대편 사면도 가파르기가 전면과 다름이 없었고 많은 크레바스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우리는 쉬는 둥 마는 둥 다시 위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 데포할 구덩이를 파고 식량과 장비를 묻었다. 데포를 끝내고 나니(19:48) 바람이 거세어지며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거센 눈보라가 몰아치는 헤드월 상단에서는 고소 때문인지 모두들 말이 없다.
오직 산소가 모자라 헉헉대는 거친 숨소리만이 들려온다. 나는 백 대장에게 헤드월을 내려가는 방법이 세 가지가 있는데 어느 방법을 사용할 거냐고 물었다. 백 대장은 하강기가 없는 대원이 있으니 주마를 사용해서 내려가자고 한다.
시간이 지체 될수록 나는 초조해졌다. 자꾸 팽팽하게 걸리는 자일 때문에 빨리 내려갈 수가 없다. 시간이 사람을 기다려 줄 수는 없는가, 고정 로프가 끝나는 곳까지 내려갈 동안 눈 폭풍이 그쳐 주기를 바랐지만, 그 맑던 하늘은 잿빛 구름을 덮어쓰고 몸을 날려버릴 듯한 바람과 함께 아예 눈을 퍼다가 붓는다. 눈보라는 화살이 살갗을 스쳐가듯 매섭게 몰아친다. 추위에 노출된 곳마다 살이 도려질 듯하고 발이라도 헛디디면 걷잡을 수 없이 떨어질 판이었다.
빨리 내려가는 것보다 안전이 더 우선이었으니까. 희박한 공기 속에서 가빠지는 숨 호흡에 입 언저리는 모두들 하얗게 얼어 있다. 영하 30도는 될듯하다. 모두들 너무 추워서 노출된 곳을 가리느라 거의 움직이지 않고 있다. 천천히, 천천히 크렘폰의 쇠발 톱을 빙벽을 박고 주마를 앞으로 밀면서 한발 한발 내려가는데 내 뒤에 있던 준해 형이 바람에 떠밀려 중심을 잃고 미끄러져 떨어진다. 바로 뒤에 줄을 묵고 있던 피터 형도 그 충격으로 같이 떨어진다.
모두들 아찔한 순간이었지만 주마가 제동을 해줄 것이고, 주마가 안 되면 앞에 확보 줄에 연결된 카라비너가 있어서 제동이 되기 때문에 걱정은 안됐다. 준해 형과 피터 형이 중심을 잃고 자일에 매달려 넘어져 있다.
형! 확보가 돼 있어서 더 이상은 떨어지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고 일어서라고 소리를 질러보지만 놀란 몸은 충격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등반 중에 일어나는 일들은 자신이 해결해야만 하는데, 하는 수 없이 다시 올라가 밑에서 받쳐주며 일어나라고 하니 나를 의지하며 일어난다.
사람이 산이다. 최고의 등반기술은 살아서 돌아오는 것이고, 온갖 역경을 이겨내며 정상에 오른 사람보다 같이 간 일행의 생존을 책임져 주며 모두를 안전하게 한 사람, 그 사람이 산보다 더 위대하다는 말을 새기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려와 올라갈 때 쉬었던 칼로 쳐낸 듯한 얼음 절벽 밑 테라스에 도착한다.(21:58)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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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끼리 자일로 서로 연결하여 상호간에 확보와 안전을 꾀하는 안자일렌 빙벽을 오르는 등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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