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범수의 선교하는 삶 그리운 케냐(2)

2006-08-2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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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베라는 나이로비 근교, 100만 명 이상의 오갈 데 없는 빈민들이 모여사는 곳이다.
물도 전기도 없는 곳. 상수도가 없으니 하수도도 없는 곳. 쓰레기와 사람이 한데 엉켜 살아가는 곳. 울퉁불퉁 진흙탕을 헤치고 쓰레기 더미 사이로 들어가다 보면 닥지닥지 함석으로 엉성하게 지붕을 이은 곳이 이들의 집이다. 등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아이들, 엉킨 머리카락에는 파리가 붙어있고 맨발로 먹을 것을 찾는 아이들.
피부병과 에이즈가 창궐하는 지역. 이들에게도 복음은 전해져야 한다. 현지 목사님과 예배를 드리고 함께 음식을 나눈 뒤에 치과 진료를 시작했다. 이들이 겪고 있는 가난과 질병의 고통을 나는 미처 알지 못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능력을 나눌 수 있음이 기쁘다. 내 손에 익혀진 의술과 치과 지식은 나와 내 가족이 더 잘 먹고 더 잘 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 쓰라고 주어진 것임을 믿는다. 나는 이들을 섬길 수 있도록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하며 열심히 치료를 했다. 치료를 받기 위해 끝없이 늘어선 줄을 보며 힘껏 두 손을 움직인다.
다음날은 마사이 부락을 찾았다. 이들은 용맹하기로 이름을 떨치는 부족이다. 정글에 사는 아프리카인들도 사자와 같은 맹수를 보면 도망을 가지만 마사이족만은 사자를 만나면 끝까지 쫓아가서, 잡은 사자를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온다. 다리가 아주 길다. 긴 막대기 창을 들고 다니다가 맹수를 잡기도 하고 여러 부인들이(일부다처) 서로 시샘하며 싸울 때에 매를 때리는 회초리 역할도 한다.
이들은 어릴 적부터 귀에 무거운 쇠붙이를 달아매 두는데 마침내 그 무게 때문에 귓밥이 어깨까지 늘어지면 다시 귓바퀴에 두어번 감아가지고 다니는 멋을 부린다. 누구나 아래 앞니 두 개는 빠져 있다. 어느 조상 때엔가 심각한 화농성 전염병을 치료하기 위해 고름을 빼느라 앞니 두 개를 뽑았던 것이 이제는 부족 전통이 되어 누구나 앞니 두 개를 빼고 다닌다. 이곳에도 LA에서 파송된 젊은 한인 선교사부부가 젖먹이, 3세, 5세 딸들과 함께 사역하고 있다.
그 다음 사역한 곳은 가리오방기 지역이다. 열악한 환경은 내가 처음 방문했던 6년 전, 3년 전과 별로 다름이 없다. 여전히 가난하고 여전히 전기는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도 한인 선교사들이 건축한 초등학교와 중, 고등학교에서 많은 인재들이 나왔다. 이곳에서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크리스천으로 거듭난 현지인들이다.
우리는 가지고 간 축구공과 양말, 학용품을 나누며 예방 교육도 하고 치과진료를 해주었다. 슬라이드를 비치며 충치 예방교육을 마치자 한 흑인 여교사가 묻는다. “그렇게 예방할 수 있는 칫솔은 대체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그녀의 질문이 끝났을 때 가지고 간 칫솔 2,000여개를 나누기 시작했다. LA 공항을 어렵게 통과한 칫솔, 남아공을 거쳐 천신만고 끝에 케냐까지 가져간 칫솔. 무거운 짐보따리를 옮기다가 한 선교사님의 허리디스크가 재발되게 한 칫솔. 사랑은 교과서 안에, 슬라이드 교재 안에서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손으로 한다는 가르침을 우리는 다시 한번 확인한다.
내일은 떠나는 날, 고생스러웠던 기억은 하나도 없고 장비 문제나 시간의 제약 때문에 내가 더 치료해주지 못한 환자들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언제 또 오시지요? 선교사님이 묻는다. 이 물음이 늘 내 가슴에 있다. 선교는 내게 주신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는 일이다. 시간과 물질과 재능을 주님께! 그리운 케냐.

김범수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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