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범수의 선교하는 삶 그리운 케냐(1)

2006-08-2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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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화국을 떠나 케냐로 향했다.
남아공에서의 치과 사역으로 지친 몸은 나에게 자꾸만 눕자, 눕자 하고 말한다. 그러나 케냐에서 우리 팀을 기다리고 있을 선교사님들을 떠올리며 나도 힘 내, 힘 내! 하고 나를 달랜다.
요하네스버그를 떠난 지 서너 시간, 비행기 좌석에서 불편한 잠을 뒤척이고 있는데 기내 방송이 나온다. “오른쪽 창 밖으로 킬리만자로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아아, 과연! 창가로 시선을 주니 만년설 덮인 킬리만자로 준봉이 끝없이 이어진다. 하나님, 꽃잎 만드신 손길은 섬세하기만 한 줄 알았더니, 땅자락을 주름잡아 울끈불끈 솟구쳐 올리신 킬리만자로 작품 솜씨는 웅대하기 짝이 없다.
나이로비 공항은 언제나 복잡하다. 서부 아프리카로 이어지는 비행기편과 연결편 승객들로 와글와글한 가운데 눈이 빠지도록 기다려도 우리 짐이 나오지를 않는다. 내일 다시 공항에 나와 확인하기로 하고 일행은 무릎을 꿇었다. 나는 볼이 부은 목소리로 기도를 했다.
“주님, 내일 오후에 나이로비 선교사님들과 그 가족들을 치료해야 합니다. 그 짐 안에 주사바늘이랑 마취약이랑 치과 기재들이 들어 있습니다. 그것 없으면 아무 치료도 못하는 거 주님이 잘 아시지 않습니까? 주님, 선교사 가족들이 실망하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에 찾아주십시오. 아멘.”
나이로비 한인교회 선교관에 와서 이틀 앞서 도착한 영어대학부 단기선교팀과 합류했다. 대학부 목사님이 묻는다. “짐 안 왔습니까? 저희도 LA에서 부친 짐 23개 중에 16개가 도착 안 했습니다.” 세상에… 우리보다 더하군. 주님, 이곳 아이들에게 주려고 교회에서 준비한 물품들이 다 거기 들어있습니다. 저희는 지금 아무 일도 못합니다.
이튿날 예정된 시간에 치과진료 준비를 했다. 조지 뮬러는 양식이 떨어진 아침에도 고아들과 함께 빈 식탁에 앉아 감사기도를 먼저 드렸다는데…. 생각하고 있을 바로 그때 공항에 나가셨던 선교사님이 가방을 찾아가지고 들어오시는 게 아닌가. 할렐루야! 우리는 아무 차질 없이 제 시간에 진료를 시작할 수 있었다.
두 팀으로 나누어 한편에서는 치과 예방교육을 하고 한편에서는 치료를 했다. 몇 년만에 만나는 선교사들과 반갑게 포옹하며 안부를 나누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그새 키가 훌쩍 커진 선교사 가정의 자녀들과 악수를 했다.
뇌종양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던 이원철 선교사님의 아들 인이는 이제 건강한 모습이었고 학교에서는 10학년, 동생과 함께 우등생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기쁘게 소식을 전한다. “저도 아빠를 따라 선교사가 될 것입니다. 아빠가 지금 이슬람권에 크리스천 학교를 짓고 있는데 이 씨앗이 열매로 맺기까지 저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어요.” 인이 남매는 현지 선교사 자녀를 위한 고교과정을 마치는 대로 메디칼 스쿨에 진학하여 아프리카에서 의사 선교사가 되려는 꿈을 가지고 있다.
이 선교사님은 지난달, 주민 99퍼센트가 모슬렘 지역인 학교 건축공사장에 가다가 운전 중에 총격을 받았다. 총알은 귓가를 스치고 핸들 잡은 손끝을 스치고 앞 유리창을 박살내버렸지만 생명은 건드리지 못했다. 함께 간 우리 일행이 물었다.
“이 선교사님, 이러다가 순교하시는 거 아닙니까?” 그러자 이 선교사님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순교요? 하나님이 그거 아무나 시켜주시나요? 순교할 수 있으면 영광이지요.”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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