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비탈에 선 아이들 꼼짝마, 이거 권총이야

2006-08-1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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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이는 나눔의 살아있는 증인이다. 우리 유진이도 가끔은 정상인들보다도 더욱 정상인들처럼 행동할 때가 있다. 그 도움을 제대로 받은 분이 바로 PK이다. 나눔의 초창기의 일이었다.
나눔에서 숙식을 하는 이가 그때는 딱 두 명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술만 먹으면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50대의 술 중독인 구종칠씨가 있었는데 이 분은 참으로 기이한 사람이었다. 개들하고 함께 수저를 사용하고, 개하고 막 뽀뽀도 하고, 개가 먹던 밥그릇에 자신의 밥을 떠먹기도 하는 이상스러운 행동을 하는 이였다. 손재주도 꽤 좋아서 선교회 이곳, 저곳을 손보기도 했지만, 유난히 주사가 심하였고, 정신이 들락날락하는 분이셨기 때문에 선교회에 그다지 오래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그래도 오갈 때가 없으신 분이라 을씨년스러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추위라도 피하고 봄쯔음 나갈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준 것이다. 당분간 선교회에 머무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로 하였다. 그때 유진이도 함께 있었을 때이다.
한날 저녁 PK가 그날 계시면서 성경공부도 하고 함께 저녁을 먹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일이 없었는데…… 아마 PK께서 오피스에서 서류정리를 하는 동안 이 분이 몰래 나가서 술을 먹고 들어왔었나 보다. 서류 일을 마치고 유진이와 종칠 형제가 잘 있는지를 살피기 위하여 여기저기 건물 이곳, 저곳을 찾아다녔지만 둘 다 보이질 않는 것이었다. 워낙에 꼼꼼하시고, 정확하신 PK는 이상스럽기도 하고, 걱정도 되어 더욱 세심히 살피며 다녔다.
그때 뒤쪽 파킹장 저쪽에서 구종칠 형제인 듯한 사람이 맥없이 벽에 기대어 서있는 것 같아 PK는 그곳으로 갔다. 구종칠 형제가 취했는지, 제정신이 아니었다.
“구형제님! 도대체 왜 이러셔요? 어디서 술을 마셨습니까?”
“너 뭐야, 왜 시비야……” 하면서 구형제는 도무지 PK를 알아보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PK는 웬만해서 화를 내시지 않는 분이셨다. 지금은 단련을 너무 받아 가끔 화를 내시기도 하지만 말이다. 구형제를 부축해서 선교회 안쪽으로 데리고 들어가려 하자, 갑자기 구형제는 주머니에서 권총을 빼어 PK에게 들이대는 것이었다. 제 정신이 아니었다.
술을 먹으면 사람이 아니고 짐승이라 했던가! 평소에는 그다지 말도 없이 조용한 편인 구형제가 그리도 야수처럼 변할 줄이야. 더욱이 총까지 빼어들고 PK를 죽이겠다고 협박을 하니…… 세상에 선교회에서 몰래나가 술까지 먹었으면 미안하지도 않은지 협박까지……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총 앞에 태연할 수가 있겠는가? PK도 아마 등골이 싸늘했을 것이다. 죽는 것이 두렵다기보다 선교회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난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셨다고 한다.
PK는 구형제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박형제는 막무가내였다. 소리소리를 지르며, 욕을 하며 방아쇠에 손가락을 가져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뒤에서 갑자기 유진이가 나타난 것이다. 우리의 유진이는 진짜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어찌나 그때만큼은 또릿또릿한 제정신인지.
“형님, 이러시면 안됩니다.”하며 뒤에서 구형제의 손을 꽉 잡는 것이었다. 그 틈을 재빨리 이용하여 PK는 구형제의 총을 빼앗았고, 구집사는 쓰러지듯 맥을 놓아버렸다. 구집사를 유진이와 함께 방으로 데리고 가서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고… PK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총을 가지고 오피스로 들어오셔서는 총알을 빼기 위해 탄창을 열어보니 총알이 하나도 없었다. PK는 너무나 허무, 또 허무하였다. ‘아~~ 속았구나’ 인생은 속는 일에 연속이다.

한영호
<나눔선교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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