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유럽 역사 바꾸어 놓은 바이킹

2006-08-1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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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역사 바꾸어 놓은 바이킹

바이킹의 무역 중심지였던 스웨덴의 고트랜드를 관광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유럽 역사 바꾸어 놓은 바이킹

바이킹의 투구.

3백년간 공포에 떤 유럽

약탈자에서 정직하고 근면한 민족으로 탈바꿈, 기독교의 놀라운 업적

‘바이킹’하면 우선 연상되는 것이 쇠뿔 달린 투구를 쓰고 소리를 지르는 스칸디나비아 해적이다. 사실 이들은 처음엔 해적이었다. Viking의 ‘vik’는 바다의 만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바이킹이 처음 출현한 것은 AD 793년-영국의 캠브리아주에 있는 린디스판이라는 마을이었는데 교회의 수도사들을 죽이고 금은 집기를 약탈한 후 사라졌다. 그 다음부터는 해마다 영국 해안에 나타나 양민들을 살해하고 재물을 빼앗아 가는 등 대담한 성격을 띠었다. 이들의 특징은 ‘무자비’였다. 약탈에 그치지 것이 아니라 남자는 죽이고 여자들은 납치해 노예로 팔았으며 마을 전체를 불사르는 초토화를 서슴지 않았다. 유럽에서 8세기부터 11세기는 바이킹으로 인해 ‘공포의 시대’를 이루었으며 당시 기독교인들의 기도에는 “주여, 북방 야만인의 노여움으로부터 우리를 구해 주소서”라는 말이 꼭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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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에서 바이킹으로 분장한 덴마크인.

인간이 어디까지 변할 수 있는가의 한계를 증명해 보인 것이 바이킹이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정직하고 부지런한 민족으로 인정받고 있는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국민들이 바로 이 잔인한 바이킹의 후예라는 것은 얼마나 역설적인 현실인가. 바이킹의 후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아일랜드, 아이슬랜드, 그린랜드,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선조가 모두 바이킹이다. 그린랜드가 현재 덴마크에 속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885년 11월 덴마크의 바이킹 우두머리 ‘롤로’가 거느리는 3만명은 배를 이용 세느강으로 거슬러 올라가 파리를 몇 달 동안이나 공격했다. 프랑스의 샤르르왕은 견디다 못해 이들이 노략질을 안 한다는 조건으로 노르망디 지방을 떼어주고 두목인 ‘롤로’를 대공으로 삼았다. 프랑스인들은 이 지방을 ‘노르망디’라고 불렀는데 ‘노르망디’란 ‘노스만(북쪽의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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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불사른후 여자들을 납치해가는 바이킹. 이들의 습격은 주로 안개낀 새벽에 이루어졌다. 당시 현장을 목격한 화가가 그린 그림.

바이킹은 동양의 북방민족 오랑캐나 비슷한 존재였으나 점점 국가의 모습을 갖춰 덴마크의 ‘카누트’왕은 1040년부터 수년 동안 영국과 노르웨이를 다스리는 위업을 쌓았다. 이 때 영국에 정착한 덴마크 바이킹들이 후일 독일계통과 섞여 앵글로색슨을 이루게 된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등장하는 무대가 왜 덴마크인지 이해가 될 것이다. 또한 러시아인들은 바이킹의 침입을 받느니 바이킹을 왕으로 모시는 것이 안보(?)에 도움이 되겠다는 계산에서 대결단을 내렸다. 스웨덴의 바이킹 두목 루릭(사진)을 왕으로 초빙한 것이다. 루릭은 노브고로에 러시아를 세웠으며 후계자인 그의 동생 올랙이 키에프로 수도를 옮겨 러시아의 기초를 다졌다. 러시아의 건국이 바이킹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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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 보관된 바이킹 전투선 드라카스.

항해에 뛰어난 바이킹은 드라카스라는 50여명이 타는 배를 이용하여 바다에서 강으로 침입했는데 속력이 빠르고 안개가 낀 새벽을 공격시간으로 잡았으며 신출귀몰했다. 이들은 상비군이 아니라 보통 때는 상인, 농부, 장인으로 있다가 약탈하러 갈 때만 무기를 잡는 부락단위의 조직이었다. 바이킹의 공포는 어떻게 유럽에서 사라지게 되었을까.
이들은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임으로써 약탈과 살인을 죄악시하게 되어 서서히 기독교 문화에 동화되었다. 파리를 공격한 롤로, 덴마크의 카누트왕, 스웨덴의 에릭왕 등 바이킹 지도층이 세례를 받으면서 바이킹 공포시대는 막을 내렸다. 기독교가 유럽에서 이룩한 최대 업적중의 하나가 토속신앙의 바이킹을 크리스천으로 개종시킨 일이다.

이 철
<이사>
c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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