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6-08-1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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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 정

병원 문을 나설 때 아버진 나를 불러 세울 때가 있다. 손까지 휘저으며 “민아야~ 민아야~” 난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 줄 알고 몸을 확 돌려 아버지를 바라보면 “민아야… 니 손씻고 가나?” 하신다. 난 “손이요? 아까 씻었잖아요. 내 손이 더러워 보여요?” 하면 아버진 “빨리 손씻고 가라. 여기서 씻고 나가. 언능…” 세면대를 가리키면서 명령조로 말씀을 하신다.
난 손을 씻으면서 “화장실 갔다온 것도 아닌데 왜 매일 나만 보면 손을 씻으라고 해?” 아버진 “니가 내를 여기 저기 만졌잖아. 병 옮는다.” 난 “아빠! 무슨 암이 전염병인줄 알아요? 괜찮아요.” 아버진 무서운 얼굴로 “아부지가 하라면 햇! 언능 깨끗이 씻엇!” 난 손을 깨끗이 씻고 손을 펼쳐 보이면서 “아빠, 여기 깨끗한 손이요~” 그제야 아버진 “그래, 이제 언능 가라”
그런 분이 우리 아버지다. 그런 아버지가 손도 씻지 않고 병원 문을 나서는 딸을 쳐다도 보지 않으신다. 혹시나 아버지의 몸에서 흐르는 진물이, 말씀하시다가 튀는 침이, 손에 묻어 있는 병균이 나에게 옮을까 걱정하시는 분이 우리 아버지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오늘 아버지의 이상한 말씀들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래도 난 아버지 말씀의 의도와 주제를 알아내지 못했다.
다음날도 아버진 거의 혼수상태이시다. 너무 깊은 잠을 주무신다. 수요일 아침에도 엄마와 삼촌이 병원에 갔지만 ‘면회사절’이다. 수요일 저녁 엄마와 난 수요예배에 참석을 했다. 엄마 선교회의 헌신예배가 있는 날이라 찬양팀인 나와 엄마가 함께 앞에서 찬양을 드리게 되었다.
‘주에 친절한 팔에 안기세 우리 맘이 평안하리니 항상 기쁘고 복이 되겠네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기쁜 찬양을 하며 박수를 치는데 앞에 서서 울고 있는 사람은 엄마와 나 둘뿐이다.
성경공부가 끝나 밖으로 나오니 엄마가 나를 기다리고 서 계시다. 우리를 대신해서 병원에 있는 언니에게서 아버지가 위독하다고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엄마와 난 아이들을 삼촌에게 맡겨두고 아버지 병원으로 달렸다. 도착하니 언니가 중환자실 밖에서 얼굴이 파랗게 서있다. “왜 이제와~ 도대체 안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겠어. 의사가 여러 명 아버지 옆에 있는데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고 무슨 일이 있는지 간호사도 말도 안 해줘…”
언니가 중환자실 문이 열려서 힐끗 보니 아버지가 여러 가지 기구를 몸에 달고 있고 아버지가 몸을 많이 떨고 있었고 의사들이 아버지 주변으로 7~8명이 와 있었다고 했다. 난 중환자실 안으로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의 안부를 물었더니 괜찮다고만 들려올 뿐 다음 대답은 없다. 한참을 지난 후에야 지난번 만났던 아버지 담당 간호사가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너무도 침착하다.
“너희 아버지가 심한 발작을 하셨는데 겨우 진정이 되었고 지금은 잠들었어.” 난 “괜찮지? 그렇지? 우리 오빠가 3일 있으면 여기 도착해. 그때까지는 괜찮겠지?” 그녀는 너무나 자신 없는 목소리로 “글쎄, 난 뭐라 말할 수가 없어 미안해. 내일 담당의사가 와서 얘기해 줄 거야.” 난 아버지 얼굴을 뵙고 가야겠다고 했다. 간호사는 겨우 허락을 해주었다.
아버지는 손발이 침대 난간에 묶여 계신다. 발작 때문에 묶어 두었다고 했다. 가슴이 미어진다. 너무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우리가 와 있는지도 모른 채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서 가까스로 숨을 쉬고 계신다. 새벽 2시가 다 되어 집에 도착을 했는데도 잠이 오지 않는다. 거의 뜬눈으로 밤을 보내고 회사로 출근하고 엄마는 이 권사님과 병원으로 출발하셨다.
회사 업무를 시작한지 2시간이 채 되지 않았는데 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가 울먹이며 “여기 아버지 담당의사가 와 있는데 아무래도 너가 와야 할 것 같아. 아주 심각하게 뭐라 하는데 다 알아들을 수가 없어.” 난 의사를 바꿔달라고 했다.
의사는 “지금 우리는 중요한 결정을 하려고 한다. 너희 아버지는 지금 암은 온 몸에 전이가 된 상태이고 장기의 활동도 거의 멈춘 상태다. 그런데 지금 문제는 두개의 폐 중에 한쪽은 활동이 멈추었고 나머지 한쪽은 물이 차 있는 상태여서 옆구리 부분을 뚫어서 폐 안에 고인 물을 빼내야할 것 같아.” 난 숨이 꽉 막힐 것 같았다. “그 방법 말고는?” 의사는 조심스럽게 “다른 방법은 편안하게 오늘 천국으로 가실 수 있게 하는 방법이 있다. 강한 몰핀을 투여해서 몸의 모든 고통을 줄이지만 혈압을 서서히 떨어뜨려 편안히 숨을 거두시게 하는 것…”
“내가 곧 그리로 갈 때까지 아무런 것도 하지마. 내가 지금 갈게. 가서 다시 얘기하자.”
사장님에게 아버지가 위독하셔서 병원으로 간다고 말씀을 드리고 차에 시동을 켜려는데 열쇠구멍이 어디에 있는지 보이질 않는다. ‘이렇게 흐린 시야로 어떻게 가지? 하나님, 왜 나에게 이런 결정을 하라 하십니까? 승욱이 때문에도 남보다 너무 힘든 결정을 많이 하고 살았는데 왜, 왜요… 왜 하필 접니까…’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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