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제 멋에 겨워 사는 사람, 행복한 사람

2006-08-0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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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남짓 지중해 연안 나라들을 돌아다본 후, 들른 런던은 모든 것이 깨끗하고 정돈되고 말이 통하고 살맛 나는 곳이었다. 남편은 방으로 배달된 런던 타임스를 보면서 행복해 했고 나는 찬물, 더운물을 마음껏 쓰면서 행복해 했다.
며칠 전 터키 한 시골에서 있었던 일이다. 하루 종일 낯선 먼짓길을 헤매고 안내원을 따라 들어간 3스타 호텔은 궁전 같았다. 방은 비단 이불과 장식들로 화려했으나 화장실에 물이 나오지 않았다.
수압이 낮아 물이 끊어졌지만 곧 나올 거라는 물은 이튿날 아침까지도 소식이 없었다. 나는 여러 번 호텔 직원을 찾았고 그에게 심한 불만을 보였다. 갑자기 물이 없어 양치질도 못하고 잘 수밖에 없었던 그 곳의 주민들도 나같이 나라에 대해 불평을 했을까? 그 날 남편이 읽고 넘겨준 신문에는 런던 경제학연구소에서 발표한 국민 소득과 개인의 만족도가 살려 있었다.
네덜란드: 연간 국민소득 $25,000 국민의 만족도 96%, 미국: 국민소득 $33,000 국민의 만족도 90%,멕시코: 국민소득 $10,000 국민의 만족도 88%,
나이지리아: 국민소득 $2,000 국민의 만족도 83%, 일본: 국민소득 $26,000 국민의 만족도 80%, 한국: 국민소득 $17,000 국민의 만족도 74%, 중국: 국민소득 $4,000 국민의 만족도 73%
이때까지는 수입이 많으면 자동적으로 행복할 줄 알았다. 그래서 국가는 국민의 행복지수를 늘리기 위해 과학적으로 따지고 계산하며 부를 이루기 위한 정책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국민 소득이 가장 높은 미국민의 만족도는 소득이 3분의1도 안 되는 멕시코와 비슷하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과 중국 사람들의 만족도가 비슷하지만 중국의 국민소득은 한국에 비해 4분의1도 안 된다. 나이지리아의 국민은 소득이 13배가 되는 일본 사람만큼이나 행복하게 살고 있다.
가난한 사람에게 돈이 생기면 행복하다. 그러나 물질적인 풍부함이 높아진다고 해서 행복지수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행복지수는 상대적이고 주관적이다. 그래서 동료보다 두각을 나타낸 사람은 몹시 행복하다. 돈은 좀 모자라도 다른 사람들보다 우수하다고 인정받기를 미국 학생들은 원한다. 똑같은 수입이라도 남과 나눈 것보다는 그 몫이 혼자의 수입이 될 때 행복도는 훨씬 높아진다.
이것은 경제 수준과 행복감이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람의 행복도는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조건을 갖춘 후에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르고 사람들이 실제로 무슨 생각을 하는가 또 어떻게 느끼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결론이다.
지난 50여년간 전세계는 개인수입은 늘고 일은 적게 하고 휴일이 많아졌다. 사람들은 더 잘 살기 위해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운 상태인 행복을 찾아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먹으며 운동을 하고 여행을 하며 스트레스를 푼다. 그래서 좀 더 건강해지고 수명이 길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행복해진 것은 아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마음의 평화, 몸의 건강 그리고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인간관계가 행복의 기본 요소이다. 이러한 행복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실패와 실수를 겪어야 하고 능동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 노력 중에 하나가 마음가짐이다. 마음먹는 만큼 행복해질 수 있다. 마음먹기에 따라 행복해질 수 있고 불행해질 수도 있다는 뜻이겠다.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옹졸한 마음을 버려야 한다. 넉넉히 지불한 호텔에서 샤워를 못했다는 이유로 다음날까지 몸과 마음 모두가 불편했던 나보다 같은 경험은 했지만 다음날 정장을 하고 아침식사를 끝낸 후 밝은 얼굴로 줄지어 호텔 문을 나가는 본토 사람들은 확실히 행복한 사람들이었다.
자기가 맡은 일에 책임을 지고, 남에게 주눅 들지 않고 자기 소신대로 제 멋에 겨워 사는 사람은 행복하다.

김준자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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