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6-08-0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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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대화

아버진 엄마와의 통화를 끝내고 조금 기운이 나시는지 얼음물을 조금 더 드시겠다고 했다. 아버지의 입술을 보니 바짝 마르다못해 입술이 다 갈라져 있다. 낮에 인공호흡기를 끼었던 자국도 입가에 선명하다.

‘참 고통스러우시죠? 그래도 아버지 너무 대단해요. 너무 존경스러워요. 전 절대 이렇게 못할 것 같은데… 너무 강인하세요. 그런데 아버지 오빠 올 때까지만 조금만 더 참으세요. 그래도 오빠는 봐야잖아요…’ 이렇게 아버지를 바라보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오빠다. 어떻게 이 시간에 전화를 걸었는지 그리고 중환자실에선 전화를 못 받게 하는데 다행히 가까이에 간호사도 없다. 오빠는 토요일에 올 때까지 아버진 괜찮겠지? 라고 물었다. 난 걱정없다고 조심해서 오라고 했다. 오빠는 아버질 바꿔 달라고 했다. 아버지에게 오빠한테 전화가 와서 바꿔 드리겠다고 했다.

저쪽 편에서 오빠가 아버지께 기운내시라고 하는가보다. 곧 자신이 온다고 그때까지 조금만 더 기운내시라고 하는가 보다. 아버진 오빠에게 “아들아… 내 아들… 아버진 너희에게 최선을 다하고 살았다. 아들아. 사랑한다. 우리 천국에서 만나자… 아들아 사랑한다…”라고 하시더니 그냥 전화를 그만 끊겠다고 하셨다. 저쪽에서 오빠가 무언가를 말하려 하지만 아버진 더 말씀없이 전화기를 나에게 넘기셨다. 내가 전화를 넘겨받으니 오빠가 우는 것 같다. 우는 것을 나에게 들키기 싫은지 빨리 오겠다며 전화를 서둘러 끊었다.
아버지도 괜히 마음이 이상한지 얼굴이 경직되어 계시다. 난 아버지의 기분을 좋게 해드리려 일부러 오버해 가면서 애들 이야기며 오늘 짜증났던 이야기며 주저리주저리 아버지께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아버진 “민아야, 저 산등성이에 물이 얼마나 차 있노?”라고 물으셨다. 난 “산? 무슨 산? 아빠 지금 어디 보고 계세요?”라고 물었다. 아버진 “저기 산등성이 안 보이나? 잘 봐라” 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지만 “아버지 물이 꽉 차있어요.”라고 말씀드렸다. 아버진 “아니 1/3정도 차있네.” 라고 말씀을 하셨다.
도대체 알 수 없는 말씀들을 계속해서 하신다. “민아야. 와 이곳에는 십자가가 없노?”라고 또 물으신다. 난 주위를 둘러보며 “아버지 십자가가 있는게 좋으세요?”라고 물었다. 아버지 “응. 내 보이는 곳에 십자가 하나 갔고 온나.” 그리고 아버진 뜬금없이 나에게 “민아야… 니 차 조심해서 타고 댕기래이. 아버진 항상 그게 걱정인기라. 작년에 니 교통사고 났을 때 아부지 얼마나 놀랬는지 니 모르제? 큰 차 타고 댕기라. 알겠제?” 난 웃으면서 “네, 돈 많이 벌어서 큰 차 타고 다닐께요.” 라고 말씀을 드렸다.
아버지의 눈 초점이 많이 흐려졌다. 난 아버지가 너무 지쳐서 헛것을 보고 계신다고 생각했다. 하신 말씀들을 몇 번을 되풀이하고 계신다. 중환자실 밖에는 어떤 것들이 보이는지에 대해 자세히 말씀하시고 또 중환자실 안에는 무엇이 보이는지에 대해 나에게 자세히 말씀하셨다. 그저 허튼 소리로 말씀하신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자세히 말씀하시기에 나도 헛갈리는 중이다. 2시간에 걸쳐 나에게 당부하시는 말씀과 아버지가 눈에 보고 계신 것에 대해 나에게 열심히 전달하시고자 하셨다. ‘어… 참. 이상하다. 왜 이렇게 알 수 없는 말씀들을 오늘 많이 하시지?
시계를 보니 밤 12시가 넘어가고 있다. 내가 먼저 “아빠, 오늘은 너무 늦었어요. 집에 갈께요. 아빠 이렇게 기운 차리고 말씀하시는 것 보니까 너무 안심!! 내일 아침에는 더 기운 차리세요. 아셨죠? 아빠 화이팅!!” 그렇게 아버지와의 가벼운 인사를 나누었다. 일어나 나오려는데 아버지가 “민아야. 차 조심해서 운전하고 댕기래이… 항상 아부진 니가 걱정이야. 그리고 아부지가 너에게 당부한말 잘 새겨듣고 알았제? 언능 가라, 아부지도 피곤하다. 쉴란다.”
다른 날 같으면 내가 가는 뒷모습과 중환자실의 문이 열려서 나가는 모습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를 물끄러미 바라 보실텐데 이번에는 먼저 눈을 감으신다. 난 몇 번을 뒤를 돌아다보며 “아빠, 저 가요. 저 가요…”라고 말씀드렸지만 아버진 좀처럼 눈을 뜨지 않으신다. 마치 일부러 보지 않으려 애쓰는 것처럼…
사람에게는 사물을 바라보는 눈인 ‘육안’과, 마음의 눈인 ‘심안’과, 그리고 영의 눈인 ‘영안’이라는 것이 있다. 아버진 나와의 마지막 대화 중에 육안, 심안, 영안의 눈으로 당신이 보고 계신 것을 나에게 말씀을 해주셨던 것이다. 난 그것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야 왜 그때 그런 말씀들을 해주셨는지 알게 된다. 아버진 허튼 것을 보고 허튼 소리를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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