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주현 기자의 트렌드 따라 잡기 칙 릿(Chick-lit)

2006-08-0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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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기자의 트렌드 따라 잡기 칙 릿(Chick-lit)

최근 소설을 영화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이 영화에서 메릴 스트립이 프라다 옷을 몇 벌이나 입었는지 모르겠지만 패션계의 생리를 엿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화와 책은 젊은 여성들에게 폭발적인 지지를 받았다.

연일 신조어가 쏟아져 나오는 패션계에 요즘 화두는 단연 ‘칙 릿’이다.

칙 릿이란 젊은 아가씨를 뜻하는 속어인 칙(Chick)과 문학(literature)의 합성어다. 그러니까 이를 직역하면 ‘아가씨 문학’쯤으로 풀이할 수 있겠는데 20~30대 젊은 여성들의 일과 사랑을 가벼운 구어체로 풀어낸 ‘섹스 앤 더 시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등이 그 대표적 예다. 1996년 영국 서점가를 휩쓴 ‘브리짓 존스의 일기’가 칙 릿의 원조 격.
출판 평론가들은 “젊은 여성들을 위한 읽을거리는 18세기부터 있었다. 한때는 결혼, 한때는 커리어 우먼이 되는 게 화두였다면 최근에는 일, 사랑, 성, 패션 등 다양한 관심사를 담은 게 특징이다. 이는 현재 젊은 여성들의 삶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2030 여성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불과 몇년전 만 해도 성공한 여성들 하면 검은 뿔테 안경에, 단발머리, 회색이나 검은색 바지 정장 수트에 일중독을 넘어선 일벌레쯤으로 규정지어 졌다.
그러나 요즘 일하는 젊은 여성들에게서 ‘범생이 스타일’은 사라진지 오래. 오히려 겉으로 보기엔 ‘생 날라리’가 아닐까 싶을 만큼 자유분방한 패션에다, 이 패션에 관한 정보며 지식이 거의 패션 전문가 뺨친다. 거리에는 그녀들을 향한 두 가지 시선이 존재한다. 동경하거나 혀를 차거나.
이들 세계에선 ‘10만달러 만들기 펀드’ 보다 ‘마놀로 블라닉 100켤레 돌파’에 관심이 더 가고, ‘정상가보다 얼마나 싸게 샀는지’가 ‘얼마나 돈을 절약한 건지’로 통한다.
게다가 이제 이들에게 패션은 또 하나의 철학으로까지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느 디자이너를 좋아하는지, 어떤 패션 감각을 가지고 있는지, 스타일은 어떤지 등은 그 사람을 파악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알렉산더 맥퀸이나 비비안 웨스트우드를 좋아하는 이들과 루엘라나 매튜 윌리엄슨을 좋아하는 이들의 성격이나 취향은 극명하게 다르다. 이들이 열광하는 건 단순한 천 조각이 아니다.
그 천 조각에 담고 있는 그들의 감각과 스타일, 위트, 그리고 철학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열광하는 디자이너의 ‘작품’은 레이블을 뒤집어 보지 않고도 쇼윈도에 걸린 그것만으로도 한눈에 척 알아보게 된다. 황동규나 기형도, 이 문재 시인의 시가 그렇듯이 말이다.
그러고 보니 패션에 대해 뭘 좀 안 다거나, 감각 있다는 평가를 받으려면 옷만 잘 입는 것만으로는 안 되는 세상이다. 부지런히 이런 알쏭달쏭한 패션용어까지 챙기지 못하면 입다물고 있어야 하니 ‘트렌드 리더’,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닌 건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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