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숙희 기자의 주방일기 낭 비

2006-08-0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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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옷장을 뒤져 안 입는 옷들을 골라내다 보면 너무 많은 티셔츠들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 작아져서 못 입는 아들의 옷들은 그렇다 치고, 한두 번 입지도 않고 새것인 채로 처박아져 있는 셔츠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개 무슨 행사 때 받아온 티셔츠들로, 글자와 로고가 앞뒤로 찍혀 있어 그 행사 이후로는 생전 입지 않는 옷들, 매년 같은 행사를 해도 또 새로 찍어온 티셔츠를 나눠주기 때문에 정말 일회용일 수밖에 없는 티셔츠들이다.
이런 것들은 어디 갖다줄 데도 없고 그렇다고 멀쩡한 옷을 버릴 수도 없어 계속 끌어안고 사는데, 미안한 얘기지만 얼마 전부터는 너무 많아서 처치곤란이라 하나씩 가위로 잘라 걸레로 쓰다가 버리는 중이다.
물자가 너무 풍부해서 걱정이다. 우리 어릴 때만 해도 귀하기 짝이 없었던 옷, 종이, 연필, 휴지, 플래스틱 제품들이 지천에 널려있고, 사람들은 오로지 많고 편하다는 이유로 마구 낭비한다.
나 어릴 때는 물이 귀해 산동네 사람들이 아래동네 수돗가로 내려와 줄서서 물통을 대고 지게로 져 날랐던 기억이 생생한데, 싱크대 수도꼭지를 하염없이 틀어놓은 채로 설거지를 하는 사람이나, 욕실에서 물을 틀어놓은 채로 이를 닦고 면도하는 사람을 보면 내가 괜히 죄책감에 안절부절못하게 된다.
더위는 한풀 꺾였지만 남가주가 전에 없이 후덥지근하고, 한여름에 천둥번개가 치는 등 날씨가 이상해지자 인간의 자연에 대한 남용과 낭비, 그로 인한 자연의 보복에 관해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때마침 앨 고어 전부통령이 나온 환경영화 ‘불편한 진실’(Inconvenient Truth)과 맞물려서 더 화제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얼마전 한 독자가 편지를 보내왔다. 라구나 힐스의 제인씨의 글은 나의 삶을 많이 반성하게 한다. 여러 독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되어 글 일부를 옮겨보았다.
“저의 언니는 세탁소에서 가져온 옷걸이는 모아다 다시 세탁소에 돌려줍니다. 꽃집에서 보내온 꽃 유리병도 안 쓰면 도로 갖다줍니다.
제 친구는 성탄절 후에 트리를 잘라 마켓 종이 백에 담아 차고에서 말리면 솔향기도 즐기며 좋다고 합니다. 그런 후에 벽난로에 장작으로 쓰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아침에 산책할 때 비닐 백을 들고 나가 쓰레기들을 줍습니다. 또 다른 백에는 나무 잔가지나 솔방울 등을 주워옵니다. 길 청소도 될 겸 그리고 흐린 날씨에 장작으로 씁니다.
요즈음 많이 먹는 수박, 감자, 양파 껍질은 비닐 백에 담아 뒷마당 구석에 두달정도 놔두면 부드럽게 썩어지는데 이것을 땅에다 묻습니다.
저는 샤워대신 목욕을 합니다. 물 소비도 줄이고 릴랙스 되기도 합니다. 또한 그 때 간단한 내복도 손빨래로 해결하여 세탁기 쓰기를 줄입니다. 빨래는 거의 드라이어를 쓰지 않으며 그늘에서 말립니다. 언니가 일본 방문시 보니 일본 사람들은 오전이면 어김없이 집집마다 빨래 대에 빨래를 아주 가지런히 말리더라고 합니다. 큰 타월은 어느 정도 말린 후 탁탁 한번씩 털어주고 계속 말리면 부드러워집니다.
여러달 전 정숙희 기자님도 잠깐 칼럼에 쓰셨는데 전적으로 동감하므로 다시 한번 제안하고 싶습니다. 남가주 수많은 교회 등 종교단체에서 점심식사 때 일회용 식기 쓰기를 중지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한번은 저도 교회 담당자께 제안했으나 설거지 문제가 곤란하다고 하셨지요.
우리 어머니 세대에 연탄불에 밥하시며 여러 형제의 도시락을 싸주시던 노고 등을 생각할 때 우리도 조금만 신경 쓰면 개선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에서 설거지 자원봉사 리스트를 만들어 가족별 혹은 특히 중고등학생들이 사인을 할 수 있는 날에 사인을 하면 학생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또한 매일 받자마자 버리는 수많은 광고지, 그것을 만들기 위해 쓰인 인력과 잉크 등 더욱이 저급한 내용의 인쇄물 등을 생각할 때 어떻게 활용하며 쓰레기를 줄일 것인가 눈을 크게 뜨고 각성하여 온난화 되는 지구를 살려 후세대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오로지 내가 많이 가졌다 해서 낭비하는 일, 그건 죄악이다. 외면하자니 죄책감이 들고, 실천하자니 불편한 것이 환경보호운동이다. 그래도 해야되는 이유는 이제 정말 바로 닥친 일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닥친 일, 우리 아이들에게 닥친 일, 우리의 손자손녀들이 겪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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