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조용히 번지는 Slow Food 운동

2006-08-0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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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유의 먹거리에 길 있다

‘빨리빨리’를 외쳐대는 우리네의 습관은 이곳 미국사회에서도 잘 알려져 있는 듯하다. 한국식당에서 일을 하는 히스패닉 쿡들의 처음 배우는 말이 바로 ‘빨리빨리’라고 하니 더 이상 변명은 없을 듯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우리의 급한 성격에 상반되는 한민족의 식문화는 슬로 푸드 운동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뜸을 들여 밥을 짓고 메주를 띄우고, 김치가 익기를 기다렸던 우리들의 먹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가 온통 슬로 푸드 운동이다.

슬로 푸드 운동(Slow Food Movement)은 1986년 이탈리아에서 카를로 페트리니(Carlo Petrini)에 의해 시작됐다. 음식 문화에 엄청난 자부심을 지켜오던 이탈리아, 로마에 미국 패스트푸드의 대명사인 맥도널드가 상륙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언론인 카를로 페트리니는 맥도널드로 대표되는 미국 팝 컬처를 폭력으로 의미 지으며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단순히 패스트푸드를 문화의 한 면으로 보고 묵묵히 받아들이지 않고 일련의 뜻 있는 사람들이 뜻을 모아 입맛을 표준화하고 전통음식을 없애는 패스트푸드의 폭력에 맞서 조용히 변화를 추진했다. 이것이 바로 천천히 음미하는 식사의 즐거움, 전통음식의 보존을 기치로 내건 슬로 푸드 운동이다.
패스트푸드가 확산되면서 그 폐해 또한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예컨대 각종 질병 유발은 물론, 자연환경에 대한 광범위한 폐해, 소농의 도산, 식량주권의 침해, 전통 음식문화의 파괴 등을 초래하였다. 이러한 폐해들, 다시 말해. 패스트푸드와 생활 속도에 노예화되어 가는 실정을 바로 잡고자 하고 다음 세대에게도 전통음식을 전수하자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사라져 가는 음식 재료를 지키고, 점점 확산되어 가는 유전자 조작 또한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카를로 페트리니의 영향력이 없이도 우리가 언제부터인가 해오고 있는 한국 농수산물을 지키고 한우를 더 값지게 여기는 운동이 바로 슬로 푸드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유기농으로 자란 농산물을 찾고 그 값어치를 인정하는 것, 그리고 우리의 전통 음식인 젓갈과 김치 그리고 종갓집에 내려오는 음식들을 알리고 보존하는 것도 그 운동의 큰 줄기이다.
초스피드 생활과 간단 간단에 익숙해진 우리의 삶의 방식이 우리의 아이들에게 어떠한 식으로 전달되어 그들의 생활을 변화시킬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다음 세대인 우리 아이들에게 금방 전자 레인지에서 돌린 냉동피자를 식사로 주기보다는 상추에 된장 얹어 먹는 맛을 알게 하는 것, 젓갈의 짭짜름한 맛을 맛보게 해주는 것, 김치를 우리음식으로 여기고 자랑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는 것 또한 슬로 푸드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 100개국의 8만명의 회원을 가진 슬로 푸드 운동 본부가 그 철학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행사와 장기 프로젝트는 다양하다. 슬로 푸드 시상대회, 우수 농산물·식품을 전시·시식하는 미각의 전당 행사, 희귀종을 보호하는 미각의 방주 프로그램, 어린아이들에 대한 미각교육, 유전자 조작 반대운동 등이 그 프로젝트들이다.
이에 더불어 각 지부도 여러 활동을 벌이고 있다. 와이너리 방문과 시음, 특정 나라의 음식으로 된 저녁식사, 푸드 생산자들과의 대화, 술과 음식궁합 찾기 시음 시식회, 다양한 주제에 대한 간담회, 특별 저녁식사, 음악을 곁들인 식사, 슬로 생활 심포지엄과 식사, 다른 지부의 방문, 가정음식 경연대회, 시음 웍샵, 음식 관련 축제를 추진하고 유럽 각국에서는 송이버섯 축제를 열어 치즈, 와인, 밤, 버섯, 등의 지역특산품을 선보이며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다.
이러한 음식 관련 축제는 소멸위기에 처한 전통음식, 음식재료, 와인을 지키며 환경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품질 좋은 음식재료를 제공하는 소규모 생산자들을 보호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패스트푸드의 종주국이라고 생각되어지는 미국에서 또한 생각이 있는 지식인들에 의해 최근 슬로 푸드 운동이 급속도로 전파되고 있다. 1999년부터 3년간 유료회원 수가 20배 정도 늘어나 이탈리아 다음으로 많은 7,000여명이 활동 중이다.
흘려만 듣던 전통농수산물, 사라져 가는 전통음식, 식량문제와 환경문제, 음식의 안전성 문제를 해결하고 먹는 즐거움을 회복하려면 슬로 푸드 운동의 여러 제시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슬로 푸드 운동에 관심이 있거나 정보를 더 알고 싶으면 www. slowfood.com을 방문하면 된다.

<정은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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