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비탈에 선 아이들 뚫어~~

2006-07-2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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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생머리에 쌍꺼풀진 큰 눈이 한눈에도 상당히 예쁜 자넷은 평소에도 활발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소곳하고, 조용하고, 가끔 이상하게 굴어서 그렇지, 매우 여성적인 아이였다.
자넷은 찔찔거리며 잘 울고, 별로 웃지는 않는 내성적이었으며,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아이였기에 아마도 그 일이 더욱 자넷에게는 창피와 수치로 남아있을 것이다.
선교회 사람이 많다보니 화장실 사용하는 것이 매우 빈번하다. 때때로 먼저 사용한 이들이 화장지를 변기에 잔뜩 넣고 플러시를 하면 가끔 변기가 막히기도 하고, 특별히 크고, 굵게 응아를 하면 변기가 막히기도 한다.
그러면 선교회에 변기 뚫는 기구 몇 가지를 이용하여 그 사태를 해결하곤 한다. 일단 흔히 사용하는 것으로 작대기에 고무로 된 모자가 달려 있는 기구, 집에서도 사용하는데 변기 구멍에 조준, 압력을 이용하여, 막힌 것을 뚫는 장비가 있고, 다른 하나는 기다란 철사 줄이 달린 것으로 이를 그 구멍에 집어넣어 깊은 곳까지 들쑤셔서 막힌 것을 조금씩 내려가게 하는 장비이다. 두 번째 것이 더 비싼 것으로 보통 때보다 더욱 심각할 때 사용하고 있다.
선교회는 이러한 장비를 사용하여 화장실을 뚫을 때가 자주 있는 편이다. 그러나 대부분 남자들이 사용할 때 그렇지, 여자들은 단 한번도 그런 일이 있지를 않았다. 자넷 사건이 있기 전까진 말이다.
자넷이 화장실에 들어 간지 2시간이 넘었는데도 도대체 나오지를 않는 것이었다. 몇 차례나 화장실에 갔다 돌아오고 돌아오던 아이들이 이상한 생각들이 들었는지 “쾅, 쾅, 자넷~ 너 그 안에 있니? 뭐하는 거야?” 여자아이들이 몇 번이나 화장실 문을 두드려댔다.
“아니야. 아무 것도 안 해. 금방 나갈 거야.” 그러나 그 금방이 벌써 2시간 혹시 그 안에서 약이나 하고 있지 않는가? 걱정도 되고, 의심도 되기 시작하였다. 안되겠다 싶어 무조건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화장실 안에서 자넷이 훌쩍거리며, 벌개진 얼굴로 빠끔히 문을 열고 나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머뭇거리며 “저기, 화장실이 막혔어요.”
화장실 문을 열자 확 풍겨오는 향긋한 냄새. 2시간씩이나 화장실에 묶인 냄새로 방독면을 끼어도 해결이 안될 정도였다. 개구쟁이들은 구경하겠다고 문을 밀치고 들어가서는 다들 왁왁 거리며 나온다. 드디어 우리의 대장, 봉사자인 David 김 오빠가 씩씩하게 들어갔다. 변기 안에 2시간 동안 푹 불어터져 커다란 이무기 같은 모습의 그것은 내려가질 않고 있었다. 변기 물은 넘치고 넘쳐서 바닥까지 화장실 전체가 아주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자넷은 완전히 KO 직전으로 서있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얼마나 화장실 안에서 고민을 했을까?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이제 창피를 다 당했으니… 속은 후련하겠다만, 며칠 동안 어떻게 고개를 들고 다닐까! 참 안된 마음뿐이었다.
몇몇의 형제들이 고무장비를 들고 화장실에 들어갔지만, 도저히 해결할 수가 없어 다시 철사로 된 긴 장비를 들고 들어 간지 몇십 분만에 땀을 뻘뻘 흘리며 나왔다. 힘겨운 전투에서 승리한 군인들 같은 아주 자랑스러운 얼굴들을 하고 화장실을 나왔다.
그 이야기는 며칠이 아니라 몇 십일 동안 선교회의 뉴스거리였었다. 짓궂은 놀림과 비웃음은 있었지만, 한 식구였기에, 열심히 뒤치다꺼리하는 우리 아이들의 숨겨져 있는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사건이었다. 아직까지도 그 일이 회자되긴 하지만…
지금 쟈넷은 열심히 사회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나 기억에 아주아주 오래도록 남아있을 끔찍한 시간일 뿐 아니라, 진한 사랑을 느낀 사건일 것이다. 자넷은 화장실에 갈 때마다 아마도 나눔이 생각나겠지?

한영호
<나눔선교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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