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기린 목

2006-07-29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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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욱이 이야기

아버지의 장례준비를 마쳤다. 이 소식에 오빠도 한국에서 스탠바이 상태이다. 가족들 모두가 서로 말은 하지 않지만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 같다.
중환자실에 계신 아버지는 우리가 면회를 하고 싶다고 해서 아무 때나 할 수가 없다. 중환자실 문밖에서 전화를 걸어 안에서 들어오라고 문을 열어주어야 들어갈 수 있다. 들어가서도 몇 시간씩 머무를 수도 없다. 때론 전화를 걸면 기다리라고 할 뿐 문을 열어주지 않을 때가 많다.
아버진 깨어 있는 시간보다 의식이 없는 상태가 더 많다. 가족들은 시간마다 병원을 드나들었다. 정말 어느 순간에 작별인사도 없이 아버지를 못 뵈게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 집에서 느긋이 있을 수가 없다. 늦은 저녁시간에도 나와 엄마는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아버지 병원으로 향한다. 병원에 도착하면 우선 엄마부터 중환자실에 올라가고 아이들과 나는 차에서 기다리다 엄마가 아버지를 뵙고 오면 나와 교대하는 식으로 매일 밤 병원을 간다.
아이들은 병원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기에 언제나 좁은 차에서 뒹굴고 있다. 큰아이는 그래도 할아버지가 편찮으신 것을 이해하지만 승욱이는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전혀 모른다. 아버지가 아프신 후로 승욱이를 제대로 봐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저녁에 차만 태우면 너무 좋아서 뒷자리에서 펄쩍펄쩍 뛰고, 헛웃음을 웃고, 자기 형아를 끌어안고 난리도 아니다. 마치 좋은 곳으로 소풍가는 양 승욱이는 밤마다 신이 났다. ‘그래, 승욱이 너라도 행복하면 됐지… 너까지 엄마 힘들게 징징거리면 더 힘들텐데 그래도 고맙네’
아침나절 엄마가 병원에 도착하니 면회가 되질 않는다고 전화가 왔다. 중환자실 밖에서 멀리 아버지를 보려고 하면 간호사가 매몰차게 문을 닫아버리는 통에 답답해 죽겠다고 한다. 나는 아무 일 없을 거라 진정시켜 드렸지만 왠지 불안하고 초조한 건 나도 마찬가지다. 아버지 주변에 의사가 족히 7~8명이 와서 뭔가를 한다고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하던 일을 내려놓고 가고 싶지만 회사 일 또한 중요한 일들이 너무 밀려 있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눈만 벌겋게 충혈되어 좌불안석이다.
퇴근시간이 가까워오자 무조건 병원으로 달렸다. 역시나 면회사절이다. 중환자실 문밖에서 전화로 간호사에게 얼굴만 그저 얼굴만 뵙고 가겠다고 해도 ‘No’이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째 중환자실 밖 복도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벽에 기대 서 있다가 왔다갔다 거렸다가… 또다시 문이 열리면 기린 목을 하고선 아버지 쪽을 바라보니 간호사들이 다들 한마디씩이다. “오늘은 그냥 돌아가. 내일 아침에 다시 오라니까!” 난 웃으면서 “아니, 오늘 꼭 봬야 해. 괜찮아지실 때까지 여기서 기다릴께. 내가 너희 방해하는 건 없잖아…”
나의 행동에 감동을 먹은 것인지 아버지가 어느 정도 회복을 하신 건지 제일 높은 간호사가 중환자실 밖으로 나왔다. “너가 미스터 김의 딸이니?” “응” “오늘 아침에 너의 아버지가 많이 위험하셨어. 아무래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지도 몰라. 오늘 전기충격을 해서 겨우 살아났는데 다시 한번 이런 일이 있으면 정말 돌아가실 수도 있어.”
난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한국에 오빠가 있는데 이번 주 토요일에 오거든 그 때까지는 아버지가 살아 계실 수 있지? 어제까지도 가끔 눈도 뜨시고 말씀도 하셨는데 하루 사이에 이러는 건 너무 당황스러워. 오늘이 월요일이니까 앞으로 5일 남았는데…” 그러는 사이 중환자실 안에 계신 아버지가 의식이 돌아왔다고 잠시 들어와도 괜찮다는 허락을 받았다.
난 단걸음에 들어갔다. 아버지가 실눈을 뜨고 나를 보시며 “민아야… 오늘이 무슨 요일이고?” 물으신다. “월요일 저녁 10시예요. 아빠, 아주 깊은 잠을 주무시고 일어나신 거예요. 아빠. 기분은 좀 어때요? 어디 아픈데 없어요?” 아버지는 시원한 얼음물을 달라고 하셨다. 난 빨대를 입에 물려 드리면서 “아빠, 오빠가 토요일에 온데요. 비행기표가 제일 빠른 것이 토요일이라 토요일에 온데요. 아빠, 물도 드시고 묽은 죽도 드셔서 조금만 기운 차리세요. 아빠, 할 수 있죠?” 아버진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 “아빠, 낮에 엄마가 한참 기다리다 그냥 가셨어요. 전화 걸어 드릴께요. 통화 한번 하세요”
난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엄마에게 지금 아빠 옆에 있다고, 아빠 끄떡없으니 걱정 말라고 말씀 드리고 아버지에게 전화기를 건네주었다. 아버진 엄마에게 “여보… 내가 지금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운지 아무도 몰라. 너무너무 고통스러워…” 엄마가 조금만 기운을 내라고 말하셨나 보다. 아버진 어린아이처럼 흐느끼시면서 “아니… 아니… 너무 고통스러워. 빨리 천국으로 가고 싶어…” 난 아버지 침대 옆에 주저앉았다. 눈물이 쏟아져서 서 있을 수가 없다. 아버지가 우신다. 아버진 침대에 누워서 우시고 난 아버지 침대 옆에 주저앉아 울고 있다.
‘아, 하나님, 저희 눈물 좀 닦아주세요’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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