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숙희 기자의 주방일기 옛날 이야기

2006-07-1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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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을만큼 먹었어도 마음만은 청춘이라, 20~30대 젊은이들과 어울려 노는 일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나도 어느 순간 세대차이를 확연하게 느낄 때가 있다. ‘옛날 이야기’를 할 때다.
40대 이상의 한국인이라면 모두 경험했던 삶, 1960년대를 살았던 한국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알고 있는 이야기를 요즘 젊은이들은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상상조차 못하겠다며 펄쩍 뛰는 경우를 자주 보게된다.
집 천장에서 쥐가 돌아다니던 이야기, 이를 박멸하느라 온 몸에 DDT 뿌리던 이야기, 학교에서 변검사를 하고 회충약 먹던 이야기, 단체로 송충이를 잡으러 가야했던 일, 빨래비누로 머리 감던 일… 이런 이야기를 해주면 깔끔 떠는 후배들은 얼굴이 사색이 될 정도로 놀라면서 믿을 수 없어한다.
같은 한국사람이면서도 불과 10년, 20년 차이로 대화가 안 될 만큼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났으니 세대차이라기보다는 한국이 너무 빨리 변한 데서 오는 현상인 것 같다. 좋은 시절에 태어나 호강들하며 자란 요즘 젊은이들은 그런 고생은 모르고 살았겠으나, 그 어렵고 어리숙하던 시절의 동병상련 추억 또한 없을 것이다.
우리 국민학교 시절엔 아이들 몸에 이가 많았다. 나는 이가 없어도 옆에 앉은 짝에게 있으면 금방 옮겨오고, 그렇게 되면 한 방에 사는 형제자매들에게 옮기기 때문에 결국 온 집안 식구가 이를 몇 마리씩 키우며 살게되었다. 머리에 사는 이는 검은 색이고, 몸에 사는 이는 흰색이며 주로 속옷 솔기 사이에 서식했던 것을 기억한다. 서케를 없애느라고 신문지 위에 아이를 앉혀놓고 할머니가 참빗으로 머리를 훑어내리던 일도 우리 또래에선 대개 한번쯤 겪은 일이다.
가끔씩 옷을 모두 벗겨서 푹푹 삶고는 온 몸과 머리에 DDT 가루를 뿌려주었다. 그 독한 살충제를 아이들 몸에 바르게 했다니,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끔찍한 일이지만 그 시절엔 그게 소독이려니 했다. 길거리에 소독차가 지나갈 때면 아이들이 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소독 개스에 온 몸을 소독한다며 무작정 차를 좇아 달리기도 했던 시절이다.
회충약 변검사 또한 잊을 수가 없다. 조그만 흰 봉투에 한 점씩을 넣어가야 했는데 그때마다 얼마나 고역이었는지, 다들 화장실이 푸세식이라 신문지를 깔고 앉아 일을 보아야 했다. 그러나 성공률이 낮아서 자기 것을 가져오는 아이보다 남의 것(주로 가족의 것)을 가져오는 아이들이 많았고, 가끔은 개똥이나 전혀 다른 이물질을 넣어서 제출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래도 검사 결과가 나오면 전원 다 회충이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으므로 줄을 서서 수십알의 회충약을 받아 선생님 앞에서 다 먹어야 했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다다다다… 쥐가 천장위로 지나가는 소리를 듣는 일도 그다지 드문 일은 아니었다. 집구석이나 교실구석에서 쥐똥이 발견되는 일도 크게 놀랄 일은 아니었고, 아침 일찍 세수하러 나왔을 때 수채구멍 근처에서 음식찌꺼기를 먹고 있던 쥐와 눈이 마주쳐 서로 깜짝 놀라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모든 엽기적인 이야기들보다 젊은 여성들이 가장 기함을 하는 이야기는‘빨래비누로 머리를 감았다’는 대목이다. 세수비누로 감았다 해도 놀랄 판에 빨래비누라니, 태초부터 샴푸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그들로서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글쎄, 왜 세수비누 놔두고 그 크고 허연 무궁화 빨래비누로 머리를 감았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 세수비누가 아까워서 그랬던 것이 아니었는지…
불과 30년, 40년전의 이야기들이다. 우리 집은 서울 한복판에 살았고 그래도 사는 축에 속했는데도 이런 일들이 기억나는 것을 보면 그것이 60년대 우리들의 보편적인 삶이었다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지금과 비교해 모든 생활이 그토록 비위생적이고 불편했던 그 시절엔 모든 것이 무공해였으나, 그때보다 훨씬 위생적이고 편리해진 지금은 모든 것이 공해요, 오염됐다는 것이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이 우리가 행한 것의 대가라고 볼 때, 편리한 삶을 추구하기 위해 우리가 파괴한 것들을 자연은 그대로 우리에게 되돌려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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