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6-07-1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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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아버지의 유언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는 아버지의 눈빛에 총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언제나 날카롭고 정확한 시선은 어디로 가고 너무 지치고 고통스러운 눈빛으로 날 쳐다보신다.
“민아야. 아부지가 너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데이. 자꾸 정신을 놓쳐서 지금 잠깐이라도 정신이 들 때 얘기해야겠다.” 난 “아버지 편하게 뭐든 말씀하세요.”
“민아야, 엄마 잘 부탁한 데이. 니도 알다시피 느그엄마 별로 호강도 못하고 산 거 니 알제? 아부지가 못 나서리 엄마 고생만 너무 시킸다. 좀 편안한 여생을 같이 보냈으면 후회가 없었을 낀데 너무 사는 것에 급급해서 엄마가 아부지 땜에 너무 힘들었어.” “아버지 제가 아무리 잘해드려도 아버지만 하겠어요? 근데 걱정마요 아버지. 엄마 제가 잘 모실께요.”
“그리고, 욱이 니 힘으로 몬 키운다. 아부지말 너무 섭섭케 듣지 마레이. 니가 너무 약해서 걱정이야.” “아버지, 저 약하지 않아요. 너무 지나치게 건강해요. 이 팔뚝 좀 봐요.”
“아니, 아부지 말은 그게 아이고 니 마음 말이다. 이제 욱이에게 무슨 일 있어도 찔찔 짜지 마라 알았나~ 니가 강해야 한데이. 그래서 말인데 너무 집에만 끼고 있지 말고, 좋은 곳 있으면 보내고 그래라. 아부지 말 무슨 말인지 니 알제?” “좋은 곳이요? 어디?”
“욱이 태어나서부터 니 한숨도 편히 못 자고 산 거 내 잘 안다. 니 그러다 골병 들어. 젊디젊은 니 얼굴 꼴이 그게 뭐꼬? 아부지는 욱이보다 니가 더 걱정인기라. 니는 내 딸이니까… 적극적으로 기숙사 있는 학교도 좀 알아보고 해서 주중에라도 니가 좀 쉬어야지. 낮에 일하고 밤엔 잠 못 자고 또 교회 일에… 니가 뭐 철인인줄 아나? 아부지 봤제, 아부지 이리 쓰러지는 거 안 보이나!” 아버지가 너무 힘주어 말씀을 하시니 승욱이에 대해선 반박할 수도 없다. 아무 말 하지 않고 다음 말씀하시는 것에 귀 기울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니는 앞으로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해라.” “네에? 사람을 살리는 일요? 아버지 전 의사도 아닌데 어떻게 사람을 살리라는 거예요. 지금부터 공부해도 저 의사되는 건 불가능해요.”
“아부지는 너무 늦게 부끄러운 구원받고 전도도 못하고 하늘나라 간다. 근데 니는 많은 사람들을 전도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부지는 널 믿는다.” “아버지, 저 성격 잘 아시잖아요. 은근소심녀인 거. 저 남에게 부탁하는 것도, 빌려준 것 다시 받아오는 것도 잘 못 하는 거 아시면서 어떻게 전도를 하라고 그러세요. 그건 좀 힘들 것 같아요”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버지가 깊은 잠에 빠져드셨다. 진통이 오시는지 자동으로 진통제를 손으로 누르셨나보다.
아버지가 깨어나시면 당부 말씀하신 것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하려고 아버지가 깨어나시길 기다렸다. 그때 간호사가 다가와 아버지의 응급수술 받은 것이 좀처럼 아물질 않고 자꾸 곪으려고 해서 재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수술실이 비는 대로 아버지를 옮겨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 날 밤늦게 재수술을 받으시고 중환자실에 며칠 계시면서 한차례 더 재수술을 받으셨다. 아버지 옆자리에는 교통사고로 만신창이가 된 환자가 두 명이나 바뀌면서 일반 병실로 옮겨지는데 반해 아버진 상태가 점점 더 나빠지고 계시다. 저녁 퇴근 후에 중환자실로 아버지를 뵈러 가면 거의 진통제로 인해 눈도 못 뜨고 계시기에 대화도 거의 나눌 수가 없다. 한밤중에도 엄마와 아이들을 다 태우고 아버지 병실로 오르내리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낮에 병원을 다녀오신 삼촌이 “민아야. 아버지 아무래도 마지막 준비를 해야겠다. 니가 지혜롭게 알아서 준비를 해둬라.” “…네… 알겠습니다. 삼촌…”
부모님의 임종에 관해서는 언제나 아들인 오빠가 있기에 단 한번도 내가 어찌 해야 하는 일에 대해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막내딸인 내가 어떻게 아버지의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을까.
막막하기도 하고 기가 막히기도 하고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모르겠고… 괜히 고개를 떨구고 앉아있기를 몇 시간… 난 전화기를 들었다.
“거기, 저기, 그러니까… 아버지 장례준비를 하려고 하는데요…” 힘들게 말을 꺼내기는 했지만 벌써부터 목소리가 떨려서 말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상대방 분은 내 마음을 알아 차리셨는지 너무 차분하게 말씀을 이어 나가신다. 난 가까운 주말에 약속을 잡고 직접 묘지로 가기로 했다.
엄마에게 이번 토요일에 가족묘지가 있는 곳에 아버지 장례준비를 위해 함께 가셔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다. 겉으로 엄마는 알았다고 했지만 밤에 엄마의 울음소리가 내방으로 다 들려온다. 엄마는 일부러 울음소리를 가리려고 라디오를 매일 밤 틀어 놓으시지만 난 다 안다. 나 역시도 울음소리를 가리려 라디오를 밤마다 틀어놓기에…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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