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양떼를 치며 춤출 줄 아세요?

2006-07-1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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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소리에 신명나서 춤을 한번 추고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몸매가 춤추기에 어울리는 모양을 갖추지 못했으면 어떻습니까? 선율에 혼을 맡겨 몸으로 뿜어내는 신명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신나는 타악기에는 가만히 있지 못하게 하는 박자소리도 있습니다. 귀로 듣고 마음으로 받아 몸으로 함께 실어내는 장단은 신나는 삶의 청량제와도 같습니다. 젊은이들에게나 나이가 계신 분들에게도 각기 제 삶의 리듬과 시대의 감각에 맞게 익힌 춤동작은 몸으로 읽어내는 음악입니다. 점잖아서 혹은 근엄함을 잃지 않기 위해서 음악의 선율에 춤출 수 있는 삶의 여유가 없다면 불행한 일입니다.
저는 춤을 출 줄 모릅니다. 어렸을 때 소풍가서 친구들과 어울려서 어색한 몸짓으로 그저 빠지지 않도록 흉내 낸 것을 빼고는 춤을 배우지도 잘 추어보려고 노력하지도 못했습니다. 이번 주에 만난 귀한 책 중에 글렌 맥도널드(Glenn McDonald)라는 장로교 목사님이 쓰신 ‘제자 만드는 교회’(The Disciple Making Church )라는 책에서 신앙생활과 춤에 대한 생각을 말하고 있습니다. 맥도널드 목사님은 춤추는 법을 아는 것과 춤을 추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합니다. 춤의 기본자세와 자세를 잘 아는 것과 그 경지를 지나 영의 선율에 혼을 맡겨 추는 춤과는 전혀 다르다는 말입니다.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는’ 교회는 교회의 구조와 운영, 성장하는 방법은 잘 알아도, 거기에 생명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춤을 추기 위해서 익혀야하는 기본동작과 세밀한 몸 동작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도, 혼이 실린 신명나는 춤이 없으면 그 지식이 아무 소용없는 것입니다.
사는 방법은 잘 알고 있어도 잘 살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깊고 맑은 영으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삶을 만끽하는 사람도 있고, 빈틈없이 손해 안보고 사는 법을 알면서도, 막상 껍데기뿐인 삶을 사는 사람도 허다합니다.
하나님은 춤꾼입니다. 연합감리교회의 찬송가에는 ‘춤추시는 하나님, The Lord of Dance’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그 가사에는 창조와 타락, 구원과 용서, 화해와 소망의 믿음 이야기를 두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신명나게 춤을 추셨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창백하고 근엄한 모습으로 우리에 대해서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믿음 속에서 패배와 승리를 거듭하고, 실망과 기쁨 속에 함께 하시며 춤추시는 하나님을 노래한 찬송입니다.
영이 흘려보내는 하늘의 곡조가 있습니다. 잠잠하고 들으면 들리는 사랑과 고통, 죽음과 부활의 선율 말입니다. 그 선율에 맞춰 춤추는 법을 잘 알고 계시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그 영의 곡조에 삶을 맡겨 춤을 추셔야죠. 무한한 영과 찰나를 사는 몸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몸짓은 ‘피리소리에 춤‘을 출 줄 아는 영에 속한 삶입니다. 그래서 잘 추는 춤은 그 곡조에 몸을 맡기는 것이지 만드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춤 한 번 추실래요?

곽 철 환 목사
(윌셔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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