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승욱이 이야기 진정한 자유함

2006-07-0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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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가운데 계신 아버지의 평안함과 담대함의 비밀은 자유함에 있는 것 같다. 모든 것에서의 자유… 진정한 자유는 어떤 매임도, 얽힘도, 구속도 아닌 것이다. 아버진 천국의 소망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있으신 분이기에 그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진정한 자유함 속에 계신 것이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믿음의 가정에서 자란 나는 믿음은 있다고 자신했지만 솔직히 천국의 소망이란 것을 몸으로 체험하고 살지 못했다.
난 막연히 먼 나라 이야기와 동화속 이야기로 천국을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천국을 본다. 아버지를 통해서 나의 마지막 때도 아버지 같은 모습이길 소망하기도 한다. 나라면 더 살다가지 못하는 아쉬움과 억울함과 여러가지 분노로 견딜 수 없을 것 같은데 아버지는 너무 다르다. 참기 힘든 아픔(몰핀을 시간시간 마다 맞고 계신 상황)에서도 원망의 소리가 없으시다.
응급수술 후에 일반 병실로 아버지가 옮기셨다. 뒷목부분부터 30센티미터 가량을 전이된 암을 제거하기 위해 절개한 부분에서 계속 진물이 흘러나온다. 아버진 똑바로 누울 수도 없으시다.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침대 난간을 붙잡고 계시는 모습이 위태롭기까지 하다. 하루에도 열두번 ‘제발 아버지의 고통이 여기서 멈추길…’ 그랬다가 ‘이렇게 고통 가운데에라도 하루라도 더 사셨으면…’ 라는 기도가 계속해서 나온다.
항암제를 맞으시면서 암세포도 항암제로 죽이고 억제시키기도 했지만 정상세포 역시 힘을 못쓰게 해놓았기에 절개한 부분이 전혀 아물질 못하고 있다. 아버지 침대 시트는 핏물과 진물로 범벅이다. 간호원을 불러 침대시트를 갈려고 하면 간당간당 붙어있는 살이 바로 터져서 진물이 분수처럼 솟구친다. 절개한 부분 끝이 곪으려는지 벗고 계신 상체가 열로 후끈거린다. 몰핀을 제때 시간 맞춰 주지않는 것을 내가 항의하니 환자가 직접 주사하는 것으로 바꿨다.
아버지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참 부담스럽다. ‘나쁜 암… 미친 암… 못된 암…’ 얼마나 무서운 병이기에 사람을 저렇게 만들어놓나 싶은 것이 나를 광분케 한다.
매일 아침 일찍 엄마와 삼촌이 병원에 와 계시고 저녁은 내가 병원에 있다. 그런데 토요일 하루를 내가 아버지 곁에 있기로 했다. 아버진 계속해서 진통제를 맞고 계셔서 거의 정신이 없으시다. 아침부터 병원식사를 두번이나 가지고 왔는데도 아버진 거의 음식을 못 드시고 계신다. 난 아버지가 잠깐 정신을 차린 때에 집에서 가지고 온 묽은 죽을 빨대에 꽂아 입에 물려드렸다. “아빠, 오늘 아무 것도 않드셔서 이거 드셔야 해요. 정신 좀 차리고 이거 드세요. 집에서 가지고 온 죽이에요 아빠! “
아버지는 “민아야, 이제 나에게 음식 주지 마라. 나 안 묵을란다. 음식을 묵는 것이 날 더 힘들게 하는기다. 알았제… 음식 치우라.”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음식을 안 드시겠다니 그건 안돼요. 얼른 한입이라도 드세요. 어서요!”
아버지는 또 “아부지는 이번엔 진짜 못일(일어)난다. 그러니까 아버지 좀 편하게 가게 좀 해도.” 순간 정신이 확 든다. 가게 내버려두라니 도대체 어딜 가신다는건가.
아무리 아버지를 설득해도 점점 서로가 언성이 높아질 뿐이다. “아빠, 그럼 시원한 물이라도 드세요. 여기 부드러운 젤리도 간식으로 나온거 있으니까 이거라도 드세요. 제발, 아빠…”
거의 애원하다시피 물과 젤리를 억지로 드시게는 했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아버지는 계속해서 까부라져서 몸을 잘 못 가누신다.
여지껏 잘 견디시다가 하루하루가 다르게 상태가 나빠지니 당황스럽기는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뼈만 앙상히 남은 아버지의 손이 침대 난간을 힘겹게 붙잡고 계신다. 난 아버지 손을 잡고 ‘아버지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해요. 아버지에게 해 드릴 수 있는 것이 음식 드시게 하는건데 이렇게 고집을 피우시고 안 드신다고 하면 어떻게 해요.’
정신까지도 오락가락 하는 아버지를 자꾸 깨웠다. “아빠, 저하고 얘기 좀 해요. 아빠~ 좀 눈 좀 떠봐요.” 아버지는 너무 귀찮다는 듯이 손을 이리저리 휘저으신다. “아빠, 저한테 하고 싶은 말씀 없으세요? 네?” 나의 질문에 아버지가 겨우 눈을 뜨신다. “하고 싶은말?” “네. 하고싶은 말씀 없으세요?” 아버지는 스스로 정신을 가다듬고 뭔가를 말씀 하시려한다.
아버진 “그래. 내 니에게 할말이 있데이. 아부지 말 지금부터 단지(단단히) 들으라…”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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