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6-07-0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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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하고

‘밀알의 밤‘이 끝나면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좀 여유를 갖게 될 줄 알았다.
행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아버진 응급수술을 받게 되셨다. 폐에 진을 치고 있던 암이 뒷목부분 그러니까 뇌로 올라가는 그 부분에 전이가 된 것이다. 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계속해서 손에 마비가 오고 그 전이된 암이 뇌에라도 들어가면 더 심각한 상황이 온다고 했다.
언제나처럼 회사 일을 마치고 저녁시간 아이들을 대충 챙겨놓고 난 아버지가 계신 병원으로 향했다. 여러 가지 일로 아이들은 계속해서 방치하고 있는 중이다. 승욱이도, 승혁이도 요즘 학교에서 뭘 하고 뭘 배워오는지도 모른다.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아이들 책가방 열어 보는 것이 일이었는데 요즘은 아이들 책가방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 학교도 대충 챙겨서 보내기에 중요한 행사를 매번 놓치고 있다.
이런 내 자신에 은근히 부아가 난다. 왜 이렇게 인생을 어렵게 살아야하는지… 내 주변 어디를 둘러봐도 나같이 사는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언제까지 이렇게 피곤하고, 정신없고, 힘든 길만 골라가야 하는 걸까. 괜히 마음에서 불만과 불평이 스물스물 올라오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마음놓고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다. 큰소리로 웃으면 ‘쯧쯧쯧… 저 철딱서니 없는 것 봐.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누워 계신데…’ 서글피 울면 ‘허, 저리 믿음이 약해서 어째. 하나님 부르심 받고 천국 가는데 왜 저리 유난을 떨고 우나’ 도대체 어떻게 표정관리를 해야 하는지도 짜증이 나는 참이다.
여러 가지 복잡하고도 심란한 마음으로 매일 밤 병원으로 향한다. 병원 중환자실에 내가 들어가니 수술 후에 아버지가 의식을 차리시는 것 같다. 나를 보는 순간 시원한 물을 한 잔 달라고 하신다. 간호사에게 물을 드려도 괜찮겠냐고 했더니 수술경과도 좋고 회복도 빠르고 해서 과일주스를 드셔도 된다고 했다.
난 아버지께 수술이 잘 되었다고 말씀을 드렸다. 아버지 또한 계속되던 팔에 마비증상도 없고 기분도 괜찮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매일 늦은 시간 내가 오는 것이 좀 걱정이 되시는지 잠깐만 앉아 있다가 서둘러 집으로 가라고 재촉이시다.
하긴 이렇게 매일 밤 병원으로 오는 것이 며칠째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하루에 겨우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보는 아버지인데 어떻게 가라고 한들 금방 벌떡 일어나 나올 수 있나. 난 아버지 옆에 서서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버지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듯하다. 난 아버지께 얼굴이 너무 밝고 좋다고, 아버지 얼굴이 천국이라고 말씀 드렸다. 그 말에 아버진 대뜸 “내가 곧 거기로 가지…”라고 하셨다. 내가 말한 건 그런 뜻이 아닌데…
난 “아버지 빨리 천국 가고 싶어요? 아직 안돼요. 10년, 아니 승욱이 말할 때까진 못 가요.” 아버지는 “아니, 아마 난 그리 오래 여기 있지는 못할 것 같데이. 물론 승욱이 말하는 것도 못 듣고 갈 것 같고.” 난 “아버지, 천국에서 연락이 왔는데요, 아버지 차례 되려면 아직도 멀었대요. 이곳에서 너무 할 일이 많다고 좀 더 있다가 오시래요”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랬더니 아버진, “말기암 선고 후에 나에게 5개월의 귀한 시간이 있었음에 감사하고, 자식들 다 배우자 끈을 붙여주고 갈 수 있어 감사하고, 갑작스런 고통사고로 하고 싶은 말 하지도 못하고 갔으면 너무 억울했을 텐데 주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다하고 갈 수 있어 감사하고, 62년 동안 최선을 다하고 살다 갈 수 있어 감사하고, 그동안 항암제가 잘 맞아서 그리 고통스럽지 않아서 감사하고, 가족들과 많은 시간 함께 보낼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다 천국에서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하데이.”
하루하루 고통 가운데 계신 아버진 뭐가 감사하다는 걸까. 죽음의 그림자가 점점 다가오는데 무엇이 아버지를 담대하게 하는 걸까. 나의 입에선 불만 불평이 아버지의 입에선 감사의 소리가, 나의 얼굴은 수심과 걱정과 어두움이 그리고 아버지의 얼굴에선 광채가… 왜 그런 걸까? 그것의 답은… 아마도…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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