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차를 즐기는 터키 사람들

2006-06-2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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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물병을 들고 다니는 인파와 여기 저기 굴러다니는 빈 물병 쓰레기, 또 담배 연기로 찌들은 그리스 거리를 벗어나 터키에 도착하니 한결 여유롭다.
기차 정거장의 안내원을 따라 들어간 호텔에는 두툼한 수건이 걸려 있고 방금 이불장에서 꺼내 반쯤 펴놓은 듯한 색깔 이불이 퍽 깔끔해 보인다.
봄철답게 시장에는 씨앗과 채소와 화초 모종을 파는 상점이 무척 많다. 한가한 노인들만이 찻잔을 들고 오가는가 했더니 터키 사람들은 어디서나 어느 때나 차를 마시고 권한다. 접시를 받친 좁은 유리잔에 따끈한 사과 차를 권하며 버스 표를 팔고 호텔을 소개하고 여행 안내를 맡는다. 버스 정류장에도 더운 차를 손수레에 싣고 파는 행상이 여럿이고 립톤 차를 버스 안에서 서브한다. 토마토와 오이를 썰어놓고 빵을 수북히 쌓아놓은 아침 식탁에서 유리잔으로 차를 마신다. 담배를 피기 때문에 차를 많이 마셔야 한다며 줄 티를 마시는 여행 안내원도 만났다.
듣기 좋은 음성으로 하루에 몇 번씩 알리는 기도시간에 따라 찬물에 발을 씻고 모스크에 들어가는 남자들과 머리를 가리고 예배당 뒷자리에 다소곳이 앉아 기도 드리는 여인들의 모습이 신실하고 아름답다.
이스탄불에서 서쪽으로 갈수록 모스크 돔과 첨탑은 줄고, 농촌이 이어지다가 자연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중부 카파도 기아가 된다. 이 곳은 화산에서 분출된 용암과 침식으로 형성된 기암괴석으로 된 돌산으로 바위를 파서 만든 집들과 비둘기 구멍들로 점철된 기이한 형상 때문에 ‘스타워즈’ 영화를 촬영한 곳이라고도 한다. 자연재해를 피해 동굴에서 기거하던 주민들은 외부의 침략을 피해 가족과 가축을 끌고 지하로 내려가면서 점차로 지하도시가 되었다.
특별히 로마인들의 학대를 피해 피난처로 찾아온 기독교인들은 이 곳에 마을을 형성하고 수도원을 짓고 예배당을 지었다. 아직도 1만명이 기거했다는 지하 8층의 도시 자리가 있는가 하면 지상 바위를 파서 집을 만들고 바위를 깎아 지은 예배당들과 벽화를 볼 수 있다.
이런 지하도시 한 곳에 도자기 공장이 있다. 입구에서부터 지하 4층까지 진열된 도자기들은 4명의 도자기 전문 예술가와 20명의 숙련사와 몇백 명의 문하생들의 작품이라고 한다. 도자기 하나 하나가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고 아름답고, 값 또한 엄청나다. 이 곳에서도 마음에 꼭 드는 예쁜 찻잔에 차를 대접받았다.
2006년 부활절은 터키 서남 지방에 위치한 에페소에서 지냈다. 마차를 타고 올라간 기원전 9세기에 세워진 에페소 대 도시는 3세기에 코트족의 침입을 받아 초토화된 그대로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지만 아직도 전세계의 관광객을 끌만큼 광대하고 아름답다. 바울이 설교했다는 2만3,000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극장은 아직도 성성하다.에페소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사도 요한이 성모 마리아를 모시고 복음서를 쓰면서 말년을 보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관광객의 발길이 뜸한 터키 수도 앙카라는 주중에도 오페라 하우스를 열고 현대 발레와 뮤지컬, 오페라를 매일 감상할 수 있다. 도시 중심 넓은 터에 꽃과 잔디를 심고 세운 다보탑 식의 한국 참전용사 기념관 역시 지나칠 수 없는 명소이다.
1973년에 건축되었으니 벌써 30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공원이 드문 이 곳 주민들이 찾는 쉼터가 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터키 사람들은 한국사람이라고 하면 무척 반가워한다.
터키 사람들은 모두가 선생님의 말을 잘 듣는 학생들 같다. 깨끗 하려고 노력하고 조용 하려고 애쓴다. 버스나 거리에서 극성스럽게 울면서 떼를 쓰는 아이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 친절하다. 복잡한 기차 정거장에서 길을 묻자 우리가 타야 할 기차를 같이 타주고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 반대쪽으로 가던 여인이 잊혀지지 않는다.
값싸고 맛있는 빵의 나라 터키, 차를 즐기고 대접하는 터키 사람들, 거리마다 세워진 디지털 삼성 광고판 때문에 더 친근감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김준자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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