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승욱이 이야기 밀알의 밤 Ⅱ

2006-06-2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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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일기

김민아

아버지가 ‘밀알의 밤’ 행사장에 못 오셨다는 엄마의 전화에 준비한 말들과 함께 머릿속이 하얗게 텅 비어버렸다. 행사가 시작되면서 무대 위에선 찬양을 부르고 이어 목사님의 설교가 있어도 난 멍하니 잠자는 승욱이의 유모차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드디어 승욱이 영상이 상영이 되고 진행자이신 노형건 단장님이 승욱이와 나를 부른다. 무대 위에 가까스로 올라가긴 했지만 그 곳에 와 있는 사람들이 전혀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노 단장님도 행사장에 아버지가 못 오신 것을 아신다. 노 단장님이 승욱이를 안고 서있는 나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신다. 그리고는 오늘 이 자리에 꼭 참석을 해야 하는 승욱이 할아버지가 못 오셨다고 말씀을 하면서 목이 메이신다. 억지로 감정을 참고 있는 나도 노 단장님도 그만 울음이 터져 버렸다. 어떻게 마무리가 되었는지 모르게 정신을 차려보니 난 무대에 내려와 있다.
다음 순서로 뉴욕에서 온 김세화 전도사님과 이일호·하경혜 부부의 찬양으로 참으로 은혜 가운데 첫날의 행사가 끝이 났다.
행사가 끝이 난 후에야 난 많은 분들이 그 자리에 온 줄을 알았다. 무대 위에선 조명 때문에 앞이 깜깜해서 무대 앞의 좌석에 얼만큼의 사람이 앉아 있는지 보이질 않은 것이다. ‘아…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줄 알았음 좀더 잘할 것을… 후회막심…’ 나도 인간인지라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나보다.
‘치, 뭐 승욱이와 내가 연예인도 아닌데 사람들을 의식하다니. 쯧쯧쯧… 정신차려!! 이 친구야~~’
많은 분들과 만남의 자리를 갖고 난 아버지 병원으로 곧장 달렸다. 병실에 들어서니 아버지가 어제보다 더 힘든 모습으로 진통제를 맞으시고 잠들어 계신다. 난 조용히 “아빠, 저 왔어요” 아버진 반쯤 뜬눈으로 날 쳐다보시며 “오늘 못 가서 미안하데이… 점심 많이 묵고 힘내서 가볼라는데 오후에 갑자기 구토가 나고 일어나질 못하겠드라. 왠만하믄 가볼라는데, 우야꼬.”
난 “아빠가 안 오셔서 좀 힘이 빠지긴 했는데 그래도 은혜롭게 잘 마치고 왔어요.” 아버진 “ 그래 누구 딸인데 하모 잘하고 말구…” 너무 늦은 시간 간호사의 따가운 눈총으로 난 병원을 나와야 했다.
아버진 ‘밀알의 밤’에 오시려고 낮에 음식을 너무 많이 드셨었나보다. 기운 내고 좀 혈색 있는 모습으로 오시고 싶으셨나보다. 그것이 더 아버질 힘들게 했으니 미안한 마음을 어찌 말로 할 수 있을까.
다음날은 주일이라 주일예배가 끝이 나자마자 아버지 병원에 들러서 아버지께 오늘도 잘하고 오겠다고 인사를 드렸다. 아버진 너무 아쉽고도 대견한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시며 “우리 딸, 화이팅!”을 가느다란 주먹을 쥐고 응원을 해주셨다. 그 힘으로 난 담대하게 남가주 사랑의 교회에서의 두번째 날 ‘밀알의 밤’ 행사에 승욱이와 함께 갔다.
감사하게도 내가 출석하는 선한목자장로교회 교인분들도 많이 오시고 평소 친분 있는 분들도 많이 오셨다. 마치 난 홈그라운드를 뛰는 운동선수처럼 어깨에 천군만마를 얻은 양 싱글벙글이다. 노형건 단장님과 난 어제보다 더 침착하고 밝은 모습으로 순서를 이어나갔다. 무대 위에서 승욱이의 매너도 어제보다 훨씬 나은 모습이었다. ‘왠지 하루 더 행사를 하면 진짜 완벽한 모습을 보일 것 같은 이 교만함. 캬…’
행사를 하면서 행사장에 오신 분들도 많이 은혜를 받았겠지만 나 역시도 너무 큰 은혜를 받았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나의 달려갈 길 다가도록 나의 마지막 호흡 다하도록
나로 그 십자가 품게 하시니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
한량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주저함 없이 그 땅을 밟음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박종호씨의 찬양 ‘하나님의 은혜’라는 곡은 승욱이 영상 뒷부분에 실린 곡이다. 정말 이 찬양의 제목처럼 부족하고 너무 평범한 승욱이와 내가 이렇게 큰 행사를 치르게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 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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