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감성시대의 패션 신데렐라 신드롬과 구두

2006-06-1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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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에 마술을 걸어 만들어진 화려한 마차를 타고 환상의 왕자님을 만나는 신데렐라의 이야기는 어릴 적 누구나 한번씩 읽어본 동화입니다. 두 번이나 작가상을 수상한 리 에젤은 ‘신데렐라 신드롬‘이라는 책 속에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신데렐라 신드롬에 빠진 여성은 어릴 때는 부모에게, 어른이 된 후에는 애인이나 남편에게 의지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한다. 그리고 일정한 나이가 되면 일생을 책임져줄 근사한 남편감을 찾는데 인생의 승부를 건다. 신데렐라가 단 한번의 무도회에서 왕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결혼에 이르기까지 필요했던 것은 화려한 마차, 멋진 의상, 그리고 유리구두였다. 이것들이 상징하는 것은 겉모양과 외모 가꾸기에 전념하면서 언젠가 마주칠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처럼 신데렐라 이야기는 시대를 초월해 유리구두를 기다리는 모든 여성에게 희망을 주는 메시지입니다. 신데렐라 이야기의 프랑스 판 원본에 나오는 구두는 유리가 아니고 모피구두입니다. 프랑스어로 흰 모피가 Vair이며 유리를 뜻하는 단어가 Verre인데 두 단어가 서로 혼동되어 전달된 것입니다. 유리구두이건 모피구두이건 여성들의 마음속에는 신데렐라 신드롬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에 구두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십여년 전 가장 로맨틱하고 코믹한 영화로 관객을 휩쓸었던 ‘The American President’라는 영화 속에 이런 장면이 있습니다. 어린 딸을 데리고 혼자 사는 미국 대통령이 아름답고 총명한 여성 로비스트와 데이트를 앞두고 딸이 데이트에 익숙하지 못한 아빠에게 그녀를 만났을 때 반드시 구두가 참 예쁘다고 칭찬하라는 조언을 해줍니다. 남녀를 불문하고 상대에게서 구두가 예쁘거나 멋지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머리부터 발목까지 아무리 완벽하게 치장을 해도 구두에서 무너지면 끝입니다. 거꾸로 발목에서 머리까지 다 허술해도 구두만 확실하면 기본은 됩니다. 여성들은 유난히 구두를 좋아하고 신발을 사는 것에는 인색하지 않습니다. 구두를 수천 켤레 사들인 이멜다 마르코스 같은 여성도 있듯이 그 심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발은 1만년 전쯤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로마 신화에서 신들의 사자인 머큐리는 날개가 달린 샌들을 착용한 것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중세의 귀족들은 화려한 의상과 장신구로 부와 사회적 지위를 과시했습니다. 영국의 리처드 색빌 백작 신발 목록에는 ‘금자수와 은자수로 장식한 장미 달린 구두 59켤레, 황금 레이스로 가장자리를 꾸민 녹색 장미 달린 구두 110켤레’라고 적혀 있습니다. 루이 15세의 정부였던 마담 드 퐁파두르의 이름을 딴 ‘퐁파두르 구두’는 신발 허리가 잘록하고 뒤축은 아찔한 경사로 올라가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그 신발을 신은 여인들은 발끝의 아픔을 참느라고 걸음마를 처음 시작한 아이들 같이 걸었다고 합니다.
내가 우울해 보이거나 힘들어 보일 때 남편은 항상 “우리 구두 사러 갈까?” 하고 명품 구두들이 모여있는 백화점으로 저를 데려 갑니다. 예쁜 구두들을 보는 순간 저는 황홀함에 빠져 어쩔 줄 몰라합니다. 이것저것을 신어보며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자처럼 거울 앞에서 여러 포즈를 취해보며 기분을 만끽합니다. 남편은 제가 황홀함에 빠져 어떤 것을 고를지 모르는 모습을 보고 가장 예쁜 구두를 골라 줍니다. 특별히 갖고 싶은 구두가 있을 때는 다가오는 생일이나 크리스마스의 선물을 미리 받겠노라고 졸라댄 적도 있습니다.
저 역시 자신의 내면 속에도 잠재돼있는 신데렐라의 신드롬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얼굴과 옷차림을 위한 거울만 보지 말고 벗은 발의 모습도 거울에 비춰 보아 자신의 발 점검을 해야 하겠습니다. 뜨거운 여름이 왔습니다. 고운 매니큐어를 바른 깔끔한 발은 자신의 마음을 싱그럽게 해주고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해줍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언젠가 자신 앞에 환상의 왕자님이 나타나기를 기대해 보십시오.


소니아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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