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엇갈린 애증 씻고 ‘1등 아빠’로

2006-06-1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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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린 애증 씻고 ‘1등 아빠’로

좋은 아버지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라 믿는 김우현씨 가족이 오랜만에 집 뒤뜰에 모여 환하게 웃으면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은 앞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장남 김영훈, 김우현·정례씨 부부, 막내딸 영림양.

아버지날에 들어본 부자의 ‘행복나누기’


자녀 교육때문에 이민와
학교문제로 대화 끊어져
작은것부터 권위 허물기


어쩌면 그는 혹은 그들은 많이 쓸쓸하고 외로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이 자처했건 아니건 간에 그들은 턱없이 높은 곳으로 올려보내져, 낮은 곳으로 내려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 높은 곳에서 그렇게 근엄한 얼굴로, 그렇게 무뚝뚝한 포커 페이스만을 강요받은 그들, 그들을 우리는 아버지라 부른다. 세월이 변해 젊은 아버지들이 자식과의 소통을 고민한다지만 신문에 나는 ‘특별한 아버지’가 아닌 이상 현실 속에서 만나는 아버지들은 슬프게도 조선시대 가부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이들이다. 덕분에 한인 가정마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른 자녀들과 사춘기 시절과의 갈등은 통과의례. 어긋난 부모와 자식 관계, 그것도 부자 관계를 회복하기란 하늘의 별따기. 그러나 여기 이 험난한 시절을 잘 헤치고 나와 행복한 아버지와 아들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물론 이는 거저 얻은 것은 아니다. 하루 앞으로 다가온 아버지날, 이들 부자의 행복 나누기를 살짝 엿봤다.


◇좋은 아버지가 되기까지

김우현(45)·정례(42)씨 부부가 이민 온 것은 지난 2000년. 울산 현대중공업 엔지니어와 미술학원 원장으로 일하던 이들이 안정된 직장을 접고 LA행을 결심한 것은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렇듯 아이들 교육 문제 때문이었다.
“그때 막 중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밤늦게까지 학교에서 공부하느라 지쳐있는데다 시험 때 과도한 스트레스로 설사와 두통으로 엄청 고생하는 걸 보면서 도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살라고 해야하는지, 또 둘째 역시 큰애와 다를게 없겠구나 싶어 미련없이 이민을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이들 부부는 영훈(18)·영림(15) 남매가 빨리 영어도 배우고 미국생활에 빨리 적응하게 하기 위해 한인들이 많은 LA를 피해 라팔마에 정착했지만 그곳 역시 한인들이 많기는 마찬가지. 그래서 이민 1년도 채 안돼 다시 브레아로 이사를 했다. 그러나 브레아에서도 남매의 정착은 고전의 연속이었다. 특히 7학년에 진학한 영훈이의 학교생활은 쉽지만은 않았다. 타인종 학생들이 영어도 못하고 덩치만 큰 영훈이를 늘 놀리고 괴롭혔다. 그러나 미국학교 생활에 익숙하지도 않을 뿐더러, 원체 말이 없는 영훈이는 이를 학교에도 집에도 알리지 않았다. 덕분에 영훈이의 학교생활은 악화돼 가기만 했다. ‘방과후 어디로 나와라’‘오늘 한판 붙자’ ‘안 나오면 가만 안둔다’등등 별별 협박에 시달렸지만 영훈이는 특별한 대응은 없었다. 그러다가 그 동급생중 한 명이 영훈이에게 ‘오늘 몇 시에 어디로 나오지 않으면 부모를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했고 영훈이는 순간적으로 앞에 있던 운동기구로 그들에게 위협을 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이 학교에 바로 이를 신고했고 다음날 경찰이 학교로 찾아와 리포트를 하는 상황에까지 직면했다. 벌써 5년도 넘은 일이지만 정례씨는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메어 온단다.
“정말 황당했죠. 평상시면 돌아올 시간이 됐는데도 아들이 안 온다고 생각하던 차에 학교에서 전화가 왔는데 가보니 경찰 차가 나와 있고, 아들이 큰 중범죄인이 돼있는 거예요. 사실 이보다 더 기가 막힌건 그 상황에서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어떻게 된 상황인지 파악조차 안 되는 제 자신이었죠.”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는 어머니의 눈에선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기 시작했다. 결국 그 문제로 영훈이는 학교에서 6개월간 정학처분을 받게 됐다.


지금도 이들 부부는 그 문제가 미국 학교 시스템을 잘 모르고 영어가 서툰 자신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괴롭힘이 심해지니까 영훈이가 아빠인 나에게도 엄마에게도 슬쩍 말을 비추긴 했어요. 그때만 해도 우리야 아이들이 자라면서 그럴 수 있겠다 싶어 무조건 피하기만 하라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낯선 땅에서 당시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면 미안할 뿐이죠. 한국에서도 모범생이기만 했으니 그런 일을 난생 처음 당했을테니 말입니다.”
아버지 우현씨 역시 당시를 담담하게 회상하지만 당시 그 일은 이제 막 이민 온지 얼마 안돼 벌어진 그 ‘사건’은 우현씨 가족을 전부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영훈이 일로 신경이 날카로워질 때로 날카로워진 부부는 속으로는 아들한테 따듯하게 해줘야지 그러면서도, 아들이 그날 그러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을 텐데 그러면서 아들을 힐책했고, 아들은 자신을 알아주지 못하는 부모님이 원망스럽기만 했단다.
“엄마, 아빠가 야속했어요. 아빠도 덮어놓고 야단만 치고, 엄마는 아빠보다 만만하니까 막 짜증내고 화만 내고….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그때 어리고 철이 없어서 그랬을 텐데 참 답답한 시간이었어요.”
결국 악순환은 가족간의 대화를 단절시켰고 이들 가족관계는 급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불행중 다행인지 그 무렵 우현씨는 ‘아버지 학교’를 가는 기회를 접하게 된다.
“사실 저도 한국에선 나름대로 괜찮은 아버지라 자부했습니다. 제 아버지 세대보다야 훨씬 깨어있고, 아이들에게 자상한 부모라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큰일을 겪고 나면서, 아버지 학교를 다니면서 참 많이도 깨졌습니다. 가만히 돌아본 저는 자녀들의 대화 상대가 아닌, 공부하라고 다그치고, 무언가에 잔뜩 신경질이 난 사람처럼 아이들을 야단치는, 그리고 그래야만 아버지의 권위가 산다고 생각하는 참 못난 아비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조그만 것 하나부터 바꿔 보기로 작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아버지로 다시 태어났다.
◇아버지는 든든한 친구
이제 아버지는 이들 남매에겐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 엄마에게 하기 힘든 말은 아버지가 도맡아 듣는 상황에 이르렀으며 딸 영림이는 부모와 관계가 좋지 못한 또래 친구들을 보면 이해가 안 갈 지경이라는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다.
우현씨는 일단 ‘괜찮은 아버지’되기로 작정하면서 아이들과 마음의 벽을 허무는 일부터 시작했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오후 9시를 넘기기가 일쑤였지만 꼭 아이들의 하루 일과를 물어보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씩은 아들과 따로 스타벅스에서 시간을 정해놓고 커피 데이트도 즐긴다.
“자녀와 대화의 중요성에 대해선 모르는 아버지는 없습니다. 실천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 그렇죠. 결국 첫 발자국 떼 놓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시작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이를 더 쉽게 실천하기 위해선 무작정 생각만 하기보다는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만드는 것이 더 현실적입니다.”
그리고 이제 아버지와 남매는 이메일 계정을 서로 공유할 만큼 믿고 의지하는 인생 선후배가 됐다. 이제 한창 고민도 많고, 예민한 시기에 친구와 주고받는 이메일을 결국은 아버지가 감시(?)하는 것인데 괜찮냐는 질문에 영훈이와 영림이는 너무 무덤덤하게 ‘아니요’라고 답한다. 그리고 이젠 아버지라고 무작정 어려워하거나 피하지도 않는다. 아버지는 이제 이들 남매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다.
“이제 아버지가 편해졌어요. 잘못해서 야단을 맞아도 제 할 얘기는 다 합니다(웃음). 덕분에 마음속으로만 꿍하게 뭘 생각지 않죠. 그리고 야단 맞는 와중에도 제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는 수긍해줄게 있으면 또 들어주십니다. 그리고 정말로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용서를 구하고 같은 실수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이런 아버지의 노력 끝에 아들 영훈이는 지난 3월 패사디나 아트 스쿨로부터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자동차 디자이너가 어려서부터 꿈인 영훈이의 꿈의 첫 발자국을 떼는 순간이었다. 더욱이 장학금도 받는데다 얼마 전엔 학교에서 수여하는 우수학생 상장도 받았다. 언제 어려운 시절이 있었냐는 듯이 부모의 마음은 흐뭇하기만 했다.
비온 뒤 땅이 굳는다고 했던가. 이제 이들 남매에게 아버지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든든한 동지이며 길동무다.
<글 이주현 기자·사진 진천규 기자>
 
  
<김우현씨가 제안하는 좋은 아버지 되는 법>

①구체적인 대화를 해라=10대 자녀를 둔 모든 부모들이 알다시피 대화는 좋은 관계를 위한 필수다. 그렇다고 무작정 안 하던 대화를 갑자기 할 순 없다. 일주일 중 좋은 날을 정해, 밖에서 만나는 것도 방법이고, 처음엔 대화의 주제를 정하는 것도 어색함을 없애는 방법이다.

②가족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기=이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자녀들에게 조부모와 유대감을 돈독히 해주는 것이다. 영훈이네는 양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모두 한국에 계신다. 그러나 자주 안부 전화를 하고, 집에 큰 일이 있으면 조부모들께서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신다고. 이들에게 조부모는 또 다른 부모인 것이다.

③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자녀들에게 아낌없는 칭찬을 해주는 것만큼 좋은 훈육은 없다는 것이 우현씨의 지론이다. 특히 야단치기 전 일단 ‘우리 영림이는 뭐도 잘하고, 뭐도 잘하는데 딱 이거 하나만 고치면 정말 좋겠다’라고 말하면 야단을 맞는 아이도 금방 수긍하고, 고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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