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좋은 아버지의 금메달

2006-06-0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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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화 (임상심리학 박사)

아버지날이 있는 6월이다. 생리학적으로 아버지가 되는 것은 아주 쉽다. 별 계획과 생각이 없었더라도 아이가 태어나면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말이 있다. “누구든지 아이는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아버지가 되는 데는 남자를 필요로 한다”(Anyone can make a kid, but it takes a man to be a father). 진정한 아버지가 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말이다.
많은 아빠들은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다 마련해 줄 수 있는 ‘좋은 부양자’가 가장 바람직한 아버지 상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며 뛰고 또 뛴다. 그러느라 정작 아이들과 같이 이야기하고 마음을 주고받을 시간과 에너지가 없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중년이 된 아버지의 마음에 쓸쓸한 바람이 인다. 어느새 커버린 아이들에게 자신의 존재가 ‘돈벌어다주는 기계’ 정도로만 비치고 있다는 것을 언뜻 느낀 것이다.
‘좋은 부양자’가 되는 것이 아버지의 최대 의무라고 생각하며 바쁘게 일만 하는 아버지들은 잠시 멈춰 서자. 그리고 ‘좋은 아버지’에 대한 진실을 정직하게 바라보자. 옛날 자기 자신의 아버지, 열심히 일은 했으나 자식에게는 거리가 멀고, 메마르고, 무뚝뚝하고, 일만 알고, 방관적이거나 비판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1924년 프랑스 파리에서 하계올림픽 게임 때의 일화이다. 빌 헤이븐스는 카나디안 싱글스의 카누(canoe) 게임에 금메달을 기대하는 선수로 뽑혔지만 그의 아내가 게임이 있을 동안 아이를 낳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중요한 결정을 해야 했다. 일생에 한번 있는 기회와 일생에 한번 있는 또 다른 기회였다. 빌은 집에 머물기로 결정했고 다른 팀 멤버들은 그가 없이 파리로 떠났다.
1924년 8월1일, 그의 아들이 태어났을 때는 게임이 끝난 지 사흘 후였다. 아마도 그는, 그 후 올림픽 대회에서 카누 게임에 대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의 결정이 과연 옳았을까 자문하곤 했을 것이다. 하지만, 1952년 헬싱키 하계올림픽이 있을 때, 그는 헬싱키에서 날아온 어떤 금덩이와도 바꾸지 못할 전보 하나를 받았다. “사랑하는 아버지, 1924년 내가 태어나길 기다려주어서 고마워요. 아버지가 받았어야 할 골드 메달을 가지고 귀향합니다. 사랑하는 아들 프랭크로부터.” 프랭크 헤이븐스가 1만미터 카나디안 싱글스 카누 게임에서 금메달을 받은 것이다.
자녀들에게 좋은 아버지는 마음의 정으로 연결된 아버지이다. 열심히 일하되 시시때때로 아이와 관심 어린 대화를 하며, 칭찬과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는 아버지가 좋은 아버지이다. 좋은 아버지들은 이따금씩 골드 메달을 받는다. 사랑스런 딸아이가 아빠를 으스러져라 껴안을 때, 무뚝뚝한 아들이 아버지를 듬직하게 허그할 때이다. 그것은 가슴 가득 차 오르는 기쁨의 금메달, 바로 인생 최고의 금메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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