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웰빙 이야기 다도

2006-06-0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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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자 <사모>

최영환 선생은 중학생인 일당에게 “차는 아무렇게나 만들어 마셔서는 아니 된다. 차 마시는 것에도 도가 있느니라, 그것을 다도라고 하는 게야” 하고는 화로 불씨 위에 숯덩이를 몇 개 넣었다. 그 숯덩이에 불이 지펴지자, 삼발이를 꽂고 찻물 끊이는 작은 솥을 올려놓았다.
물 끓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을 때 “이 소리가 무슨 소리와 비슷하게 들리느냐? 혹시 솔바람 소리 같지 않느냐?” 가만히 귀를 기울이니 정말 소나무 숲속에서 들려오던 바람소리와 비슷하게 들렸다. “정말 소나무 숲에서 나는 바람 소리 같아요.”
“그래서 찻물 끊는 소리를 송풍이라고 한다. 송풍소리가 없어질 때까지 물이 끊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100도가 되면 물 끓는 소리도 나지 않게 되거든. 차는 100도로 끓이면 향기가 없어지고 비타민도 파괴된다. 송풍이 들려오면 물그릇을 화로에서 내려놓아야 한다. 이때 온도가 80도쯤 될 것이다.”
최영환 선생은 송풍이 들려오자 솥을 내려놓았다. 그 다음 대나무로 만든 국자 모양의 그릇으로 그 물을 떠서 찻잔에 부었다. 끓인 물로 찻잔을 가신 다음 그 물은, 물 부어두는 그릇으로 옮겼다. 다음 순서로 작은 대 주걱으로 파하란 녹차 분말을 찻잔에 두 스푼 떠 옮겨 담았다. 물을 붓고 다대로 찻잔을 짓기 시작했다.
“차 젓는 것도 방법이 있다. 바로 젓고 외로 젓고 힘도 주어, 골고루 거품이 나올 때까지 정성 들여 저어야 한다.” 최영환 선생은 그렇게 잘 저은 찻잔을 손으로 감싸서 잡은 다음 자기 앞으로 내려놓고, 손을 모두어 무릎에 내려놓으며 고개를 약간 숙였다.
“마셔 보아라. 찻잔을 들기 전에 너도 두 손을 나란히 바닥에 대고 고개를 숙이면서 감사히 먹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예의니라. 찻잔은 왼 손위에 올려놓고 바른손으로 찻잔의 눈이 내 앞으로 올 수 있도록 두 번 반을 돌린다. 그리고 차는 두 모금 반에 다 마셔야 하며, 먹고 나면 입이 닿았던 부분을 손으로 닦고, 찻잔을 내려놓은 다음에는 차 마실 때 옷매무새가 흩어진 것이 아닌가를 확인하기 위해 옷깃을 매만지는 거란다.”
“차를 다 마셨으면 찻잔 구경을 해도 되겠느냐고 양해를 구하고 감사하는 것도 다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니라. 찻잔을 살피며 칭찬을 한 다음 찻잔을 뒤집어 밑 부분도 살펴라. 그 곳에 써있는 도예가 이름과 연대 등을 확인하는 순서를 빼놓아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는 다 마신 찻잔에 물을 붓고 다대로 저어 씻은 후에 수건으로 닦아서 찻잔을 간수했다.
“다도는 본래 우리의 것이었다. 백제나 신라시대에 이미 차를 마시는 법도가 정립되어 있었고, 그것을 일본 사람에게 전해준 것도 우리 선인들이다. 한데 일본 사람들은 그것을 잘 계승 발전 시켰는데 우리는 전통 다도가 소실되다시피 했거든.” “좋은 법도를 소실시킨 것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독립은 다른 것이 아니고 우리 것부터 찾고 지키는 운동인 것이니라.”
일당인 나는 그동안 일본에서 오래 살았고 중국도 여행했으며 유럽의 각국을 관광할 기회도 여러 번 가졌었다. 그런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우리 나라 물맛이다. 우리 나라 물맛은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월등히 뛰어나다. 시원한 냉수나 구수한 숭늉 맛은 특히 일품이다. 특별히 차를 끊여 마시거나 별도의 음료수가 필요 없는 나라가 바로 우리 나라인 것이다. 어찌 보면 다도가 유실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굳이 차를 끓여 마시지 않아도 될 만큼 물맛이 좋으니까.
기실 다도라는 것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기왕에 차를 즐기려 한다면 차를 마시는 데에 따르는 도를 지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그것이 처음 우리 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우리의 것을 찾고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자는 뜻이 헛된 것은 아닐 것이다.
-일당 스님의 자전 소설 ‘어머니 당신이 그립습니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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