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비탈에 선 아이들 정신병

2006-05-2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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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회가 국제적인 단체로 성장했는지 칠레에서까지 나눔선교회의 소문을 듣고 한 형제가 들어왔었다. 그래서 별명이 칠례이다.
이 칠례 형제는 흥섭이와 마찬가지로 제정신이 아니다. 가끔은 올바른 소리도 하지만, 대부분이 횡설수설하고, 갑자기 화를 내기도 하며, 주먹을 들어 여자아이들을 협박하기도 했다. 가끔씩 난폭한 증상을 나타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6개월 정도를 함께 생활하다가 정신병원으로 보내지게 되었다.
그러나 가기 전까지 최대한 칠례와 대화도 해보고, 달래보기도하며, 관심을 갖아 주기도 했지만 나눔에 칠례 형제 혼자만 생활하는 것이 아니고, 많은 이들이 함께 생활하는 곳이기 때문에 공동체라는 어쩔 수 없는 환경이 칠례와 함께 생활하지 못하는 장애의 이유가 되었다.
그것은 행여 칠례가 다른 이들에게 폭행이라도 한다면 큰 문제가 발생하기에 이를 사전에 예방해야만 했다. 보내면서도 너무나 가슴이 아려왔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했는데… 더욱이 칠례 형제는 너무나 나눔을 좋아했었는데… 어쩔 수 없이 병원으로 가야한다는 사실을 이미 칠례도 알고 있는 듯 했다.
칠례 형제는 매우 똑똑하고, 아주 운동을 잘했던 친구였다고 한다. 그것도 거의 국가대표 수준과 맞먹을 정도로 검도와 태권도의 꽤 높은 단증까지도 이미 고등학교 때 가지고 있었던 한때 잘나가던 친구였다.
이렇게 똑똑한 칠례가 단 한번 호기심에 친구들과 함께 마약을 피워보았다. 대여섯명이서 시도를 했었고, 그때 마약을 돌아가면서 몇 모금씩 빨고는 그 후부터 갑자기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친구들은 멀쩡하였는데, 유독이 칠례와 다른 한 친구가 비슷한 증상이 나타났던 것이다. 말도 느려지고, 더듬거리게 되었으며 생각이 더디 가다가 결국은 헛소리까지 하는 것은 물론이고 갑자기 난폭해져서 집을 때려부수고, 생전 말대답 한 마디하지 않던 순했던 칠례가 부모에게 무섭게 대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희한한 증상이 생기자 부모는 너무나 당황스러웠고, 약을 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하였기에 바로 정신병원으로 데리고 갔던 것이다. 그러나 약물이라고 상상도 못했기 때문인지, 경험이 없는 의사였기 때문인지, 마약테스트조차도 하지 않고 몇 가지 상담을 하더니 신경안정제와 그밖에 보편적인 정신병자 약들을 처방해 주었다. 이 안정제를 먹으면 주로 잠을 자고 느려지고 게을러진다. 또한 한번 먹게 되면 평생을 먹어야 할지도 모르는 약을 먹게 된 것이다. 이 약을 먹고 나자 칠례는 얌전해졌고, 기운이 없어서 계속해서 잠만 자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점차 나아지는 증상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정신병 약을 먹지 않으면 계속적으로 처음 시작된 똑같은 포악해지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자 부모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환경에 변화를 주면 바뀔까하여 비싼 돈을 들여 캐나다로 유학을 보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판단이었다. 정신이 제정신이 아닌 사람을 유학 가서 공부를 하라고 한다면 하겠는가? 결국 유학 간 칠례는 10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칠례로 되돌아왔고 그때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해져서 도저히 함께 생활할 수 없는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수시로 때리고, 부수는 통에 부모가 무서워서 함께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럴 때마다 정신병원으로, 신경안정 약으로 성난 칠례를 잠재웠고, 이 일이 거듭될수록 칠례는 더욱더 무능하고, 사람구실을 못하는 이로 점점 변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선교회 소식을 들었고 고치기에는 너무 늦어 치료가 된다는 것은 바라지도 않으니 다만 잠시 떨어져서 부모가 숨을 돌릴 수 있는 시간만이라도 허락해 주십사 하면서, 무조건 선교회에 칠례를 놓아두고 가는 바람에 다시 칠례로 보낼 수도 없는 형편이 되고 만것이다. 그런 칠례가 선교회 와서 한동안 좋아지는 듯싶었지만, 오래 복용한 정신병 약물을 넘어서기에는 너무나 늦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칠례를 보낼 때 자꾸 자꾸 뒤돌아보며 멀어졌던 칠례의 모습은 오랫동안 내 가슴에 남아 지워지지 않고 있다.

한영호
<나눔선교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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