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6-05-27 (토)
크게 작게
소중한 것을 지키기

내 인생에 이리 바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너무 바빠 정신을 못 차릴 정도이다.
아버지 병원도 정기적으로 같이 가야하고, 승욱이 청력검사로 UCLA도 가야하고, 직장 일에, 집안 일에, 기본적인 생활에 거기다 ‘밀알의 밤‘ 준비로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똑 부러지게 하는 것이 없다. 하루에도 여러 번 실수가 생기고, 끝없는 피로감에, 항상 입에는 너무 바쁘다는 말을 달고 지낸다.
큰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는데 대화 도중, “엄마, 너무 바쁘지? 우리 엄만 너무 바빠”라고 먼저 선수를 치는 것이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다. 친구 생일파티도 가고 싶고, 주말이면 영화도 보러가고 싶은 큰아이의 마음은 알지만 도저히 시간을 내줄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 모든 것을 이해하는 큰아이가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토요일 오후, 정말 큰마음 먹고, 아이 둘을 데리고 공원을 가겠다고 집을 나섰다. 너무 오래간만의 외출이기에 승혁이도, 승욱이도 신이 났다. 큰아인 괜히 “엄마 진짜 바쁜데, 그치?”라고 말을 꺼낸다. 공원에서 아이들과 오래간만에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차에서 승욱이를 내리려는데 승욱이 귀가 허전하다. 언제나 달려 있어야 하는 오른쪽 귀 뒤편의 동그란 자석이 보이질 않는다.
“욱아! 귀에 붙여 있던 자석 어딨어? 응 ? 어디다 떨어뜨린 거야?”
아… 큰일났다. 귀에 붙이는 자석 아니 어느 파트가 하나라도 없으면 들을 수가 없는데 제일 비싸고 여유 분도 없는 파트가 없어졌으니 당황한 마음은 아무도 모를 거다.
다시 애들을 차에 싣고 동네공원으로 내달렸다. 해는 벌써 뉘엿뉘엿 넘어가서 잘 보이지도 않는데 승욱이가 지나다녔던 길을 여기저기 찾아 헤매고 있다. 혹시 잔디밭에 떨어졌나 싶어 엉금엉금 기면서 바닥을 샅샅이 뒤져도 하루종일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와 동네 개들이 실수하고 간 것밖에 없다. 그네 타다가 혹시 모래밭에 떨어뜨렸나 싶어 모래를 파헤쳐도 그 어디에도 없다.
여기저기 기어다녀서 바지는 엉망이고, 손은 하도 여기저기를 파헤쳐서 흙투성이다. 순식간에 깜깜해져서 더 이상 공원에 머무를 수도 없다. 그 순간 왜이리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녀석 도대체 어디다 흘린 거야. 눈이라도 보면 어디에 떨어뜨렸는지 손짓이라도 할 수 있을 텐데… 말이라도 떠듬거리고 할 수 있으면 말이라도 해주었을 텐데…’
귀에 붙이는 것이 자석이다 보니 냉장고 옆을 지날 때면 승욱이 자석이 냉장고에 붙어버리는 일이 빈번하다. 집에서 잃어버리면 대충 쇠부분 어딘가에 붙어 있을 것을 알아서 찾지만 이번처럼 밖에서 잃어버리면 영락없이 못 찾게 되는 것이다. 여러 가지로 속상한 마음을 감추질 못하고 이리저리 동분서주하고 있는 모습을 승혁이가 옆에서 미안한 듯 지켜보고 있다. 내가 잘 챙기지 못해서 생긴 일인데 괜히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승욱이 내일 학교는 어찌 보내지? 어휴~ 이거 언제 주문해서 다시 받나… 옆에 서서 미안한 듯 서 있던 승혁이가 “엄마, 내가 찾아볼게. 동그랗게 생긴 거 브라운 색깔 말하는 거지?” 난 “됐어! 이렇게 깜깜한 시간에 어떻게 찾앗! 엄마가 다 찾아 봤잖앗! 빨리 집에나 가자! 으이씨…”
차를 타고 오면서 머릿속에는 ‘도대체 왜이리 되는 일이 없는 거야? 도대체 이게 몇 번째야 몇 번째, 아이 참… 짜증이 나서 못살겠네. 오늘 나오질 말았어야 하는데…’
집에 오는 대로 컴퓨터 앞에 앉아 잃어버린 파트를 주문했다. 일주일은 족히 걸려야 도착하는 파트 때문에 승욱이는 일주일간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한다. 항상 여유 분으로 모든 파트를 2개씩 준비하고 있지만 선을 끊어뜨리고, 부서뜨리고, 잃어버리는 통에 도저히 감당이 되질 않는다.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서 씩씩거리고 있는데, 승혁이가 내 의자 뒤에 와서 “엄마, 다음부터 승욱이랑 밖에 나가면 승욱이 귀 잘 보고 있을 게… 엄마 그거 잃어 버려서 너무 화나지? 그거 비싼 거라고 했잖아. 다음부터 어디 가지 말자. 집에서 TV 보고 놀자 엄마…” 순간 승혁이에게 너무 미안한 생각이 든다. 언제나 승욱이 형이라 양보만 하고, 동생 때문에 잘 챙겨주지도 못하는데 내가 그것도 몰라주고…
파트를 잃어버린 건 다시 사면된다. 하지만 큰아이의 상한 마음은 다시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언제나 승욱이만 배려하고, 중심에 두고 생각한 이 엄마가 또 하나의 깨달음을 갖게 되었다. 장애를 갖고 있는 아들도, 장애를 갖고 있지 않은 아들도 다 소중하다는 것을…

김 민 아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