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숙희 기자의 주방일기

2006-05-2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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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닫는 식당

살림, 삿포로 런던, 일산오리구이, 장터구이골, 오미네 부대찌개, 칭, 미소, 도토리마을…
위에 열거한 이름들이 낯익지 않은가? 한인타운에서 바로 지난 2~3년새 문을 열었다가 곧 문을 닫은 식당들이다. 그리고 부끄럽게도 이중 대부분이 우리 푸드 섹션에 맛있는 식당으로 소개됐었다. 생각나는 이름만 쓴 게 이 정도니 외곽지역, 모르는 식당들까지 합치면 1년에 적어도 수십개 업소가 문을 열었다 닫고 있을 것이다. 한인 식당업계가 부침이 심하다는 것은 다 아는 이야기고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지만, 이거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망하는 식당들의 공통점은 크게 보아 세가지다. 첫째 맛이 없다, 둘째 서비스(혹은 운영)가 좋지 않다, 셋째 위치가 나쁘다는 것이다. 이중 두가지만 갖춰도 6개월을 버티기가 힘든데 세가지를 고루 갖추고 개업하는 배짱좋은 식당들도 아주 없지는 않다.
하긴 요리와 경영은 별개의 분야라, 솜씨좋은 요리사가 식당을 열었는데도 파리 날리는 곳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 요리를 전혀 모르면서도 비즈니스 감각이 있는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이 성공률이 높은 경우도 많이 본다. 미국에서도 유명 레스토랑들은 스타 셰프들이 직접 오픈해 성공한 케이스가 많지만 그보다는 망하는 셰프가 더 많다는 것이 정설이다.
아무리 그렇다해도 그렇게 쉽게 식당을 열고 그렇게 쉽게 닫는다는 사실이 너무 이상하다. 상당한 돈과 시간과 에너지가 투입되는게 요식업인데 어떻게 마케팅도 제대로 안하고 무작정 개업하는지 신기할 뿐이다. 어떤 곳은 수십만달러나 들여 인테리어를 멋지게 꾸미고 개업했는데도 몇 달만에 문 닫는 곳이 있으니 안타깝다고 해야할까 어리석다고 해야할까.
푸드 섹션에는 우리가 맛있다고 판단하여 소개하는 식당들도 있지만 신문에 한번 내달라고 전화를 해오거나 인맥을 동원하기도 하고, 때로는 광고를 많이 냈다고 뻐기며 은근히 취재를 부탁해오는 식당을 찾아가는 일도 드물지 않다. 그런데 그런 식당일수록 기자가 취재하러 갔을 때와 평소 사먹으러 갔을 때 음식 맛이 큰 차이를 보이는 경우를 빈번하게 겪는다. 취재할 때는 음식이 맛있고 정갈해서 맛있게 기사를 쓰는데, 다음 번에 손님이 되어 가보거나 기사를 읽고 가보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도대체 그 맛이 아닌 것이다.
그보다 더 나쁜 것은 신문에 한번 크게 나오면 한동안 손님이 부쩍 느는데 그때 매상을 올려 식당을 팔아버린다는 업소들의 이야기다. 한마디로 신문을 이용한 행태로, 우리 신문사에 걸려있는 고 장기영 사주의 유명한 어록 ‘신문은 아무도 이용할 수 없다. 신문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를 떠올리면 씁쓸하고 허탈하기 짝이 없다.
이런 모든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누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한마디로 “한국사람들은 요리를 잘하거나 좋아해서 식당을 여는게 아니라,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식당을 개업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그것은 식당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스몰 비즈니스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민사회라는 상황 때문에 자신의 전공을 살리는 업종보다는 장사 잘 되는 업종을 찾아 노하우만 배워서 오픈하는 업소들이 대부분인 것이 사실이니까.
하지만 식당은 ‘먹는 장사’ 아닌가. 우리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 사람의 건강이 직결된 비즈니스인데 그처럼 무성의하거나 쉽게 달려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많은 식당들이 갖고 있는 ‘대를 물려온 장인정신’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최소한 내가 운영하는 곳, 내가 파는 상품에 대한 자존심이라도 가져주길 바라는게 지나친 기대일까?
망하는 식당들도 공통점이 있듯이 잘 되는 식당들에도 공통점이 있다. 20~30년 넘게 언제나 손님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동일장, 강남회관, 용궁 같은 곳이 그런 식당들로, 이런 곳들은 첫째 맛이 변함없다, 둘째 서비스가 전문적이다, 셋째 항상 주인이 나와서 웃으며 손님들을 맞이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오래 근무한 종업원들이 많다는 것 등이 공통된 특징이다.
식당을 오픈하려면 잘 되는 식당에 가서 그 비결을 연구하는 일부터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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