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두레마을 이야기 밭을 갈다보면

2006-05-2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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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을 트랙터로 갈다보면 많은 것들을 보고 만나게 됩니다. 씀바귀와 냉이, 그리고 각종 크고 작은 들풀들과 이름은 잘 알 수 없지만 다양한 꽃들과 벌들을 볼 수가 있지요.
트랙터가 지나간 자리는 부드럽고 촉촉한 흙을 보게 되는데 가끔씩 트랙터에서 내려서 흙을 한줌 쥐고 냄새를 맡아보면 존재 근원의 냄새가 바로 이 냄새겠거니 생각하게 되죠.
때때로 두더지가 트랙터 소리에 놀라 밖으로 튀어 올라오면 잡을 생각도 안 하는 건 아니지만 그 하는 모양이 신기해서 멈춰서 바라보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냄새로 분위기를 파악하고 이내 흙 속으로 들어갑니다.
들판의 두더지는 주로 풀뿌리나 나무뿌리를 갉아먹고 사는데 내게는 여간 번거로운 존재가 아니랍니다. 가끔씩 나무가 이유 없이 죽어서 흔들어보면 뿌리 없는 나무만 힘없이 빠 나오죠.
들쥐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몰라 헤매는 모습이 꼭 내 자신을 닮은 듯 합니다. 그러다가 하늘에서 대기하고 있던 까마귀와 매에게 잡혀 하늘로 올라가기도 합니다. 헤매다 가는 불쌍한 인생을 닮았습니다.
이 곳은 들판이라 큰 동물이 없는 것 같아도 토끼가 참 많고 가끔씩 코요테, 들다람쥐, 스컹크, 여우도 있지요. 풀이 있는 곳엔 여지없이 토끼가 있습니다. 트랙터 소리에 놀라 뛰어 달아나는(순전히 제 입장에서) 토끼를 이웃집 개가 쫓다가 이내 포기하고 말죠.
어제는 트랙터를 갈다가 불쌍한 어린 토끼 한 마리를 만나서 이것을 그냥 둘까 하다가 다른 짐승에게 이내 잡힐 것 같아서 주머니에 넣고 저녁 해질 무렵 집에 들어와 주머니에서 꺼내 놓았더니 아이들은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토끼는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 참 불쌍하더군요. 좀 자라면 놓아주리라 생각했었지요.
오늘은 밭을 갈다가 어제보다 좀더 큰 토끼 한 마리를 잡아 주머니에 넣어 들어와서 어제 가지고 온 토끼가 있는 박스에 넣어 주었더니 좀 덜 외로워하는 듯 느껴졌지만 이게 잘 하는 것인지… 갈팡질팡하는 내 모습만 확인하게 되는군요.
들판에서 일을 하다보면 가끔씩은 자연 속에서 논다는 느낌을 가질 때가 있지요. 좀더 자연스러워져야지 하면서도 아직도 외곽에 머물러 있는 모습만 보게 됩니다.
이제 새하얀 자두꽃도 피기 시작하고 연분홍 복숭아꽃도 피기 시작합니다.
그러고 보면 자연은 참 많은 것을 보여주는군요. 성서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께서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고 했는데 아버지의 집이 자연인 듯 느껴집니다.

조규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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