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양떼를 치며 하나님 어머니를 위하여

2006-05-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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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늘 아버지로 불렸습니다. 성경말씀의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님은 아버지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찬송가의 구절이나 요즘 나온 찬양곡이나, 복음성가에서도 늘 하나님은 아버지이십니다. 유명한 그림에서도, 우리들의 기도에도 늘 하나님은 아버지이십니다. 교회의 오랜 역사를 두고도 하나님은 늘 남자이시고 아버지셨습니다.
사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른 것은 우주를 창조하시고 영원에서 영원토록 계시며 우리의 이성과 상상으로 터득이 안 되는 분을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존재로 모시기 위해서 입니다. 막연한 신으로, 혹은 ‘궁극적인 존재이유’로 부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면서 우리들은 하나님과 구체적으로 만날 수 있고, 모실 수 있으며, 영광 돌려 드릴 수 있는 분으로 우리 곁에 계십니다.
하나님도 막연한 신으로, 창백한 창조주로 남아 계시기를 싫어하셔서 줄곧 우리들 틈에 함께 하시며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만드시고, 후회하시고, 다시 사랑하시고, 또 실망하시면서 우리가 아는 아버지와 자식 사이의 관계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의 몸을 하고 계셔서, 혹은 남자로서의 성품만 지니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역사를 두고 남자가 늘 우위를 차지하고 지배하는 자의 모습으로 살면서, 위에 계시고 더욱 능력 있으신 남자의 모습으로, 아버지의 모습으로 이해되어 불린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하나님에게는 자상하고 세밀하고 품어 주시는 어머니 같은 사랑도 많으신 분이십니다. 용기 있고, 담대하며,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아버지의 모습도 있지만, 인내하시고, 기다리시며, 싸매시고, 끌어 안아주시고, 옆에서 말없이 계셔 주시는 어머니의 모습도 많이 있으십니다.
어머니날을 지나가면서, 하나님에게서 어머님의 품을 그려보는 것도 은혜로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교리를 따지고, 성경을 따져가며 하나님이 아버지만 될 수 있다고 하면, 함께 목소리 높여가며 토론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같은 어머니날에는 하나님을 어머니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좋습니다. 늘 들어오고, 불러왔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는 하나님의 호칭을 두고 교리적인 의무를 가지고 부르기보다는 사랑하는 부모님에 빗대어 나를 사랑하신 그분을 모시고 싶어서 입니다. 나의 시작은 이 사랑이고, 내가 지금 있음은 이 사랑으로 비롯된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모든 것은 이 사랑이요, 관계인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기 위한 가족간의 사랑을 곤고히 하기 위해서라고 나는 믿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성취가 아니라 관계이고 어울림입니다. 사랑은 기독교 교리의 중심이 아니라, 나를 하나님과 잇는 그 모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도, 그래서 이 사랑, 관계를 위한 것이요. 하나님을 나타내는 모든 사랑의 행위는 거룩한 것입니다. 나에게 하나님은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나 어머님이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음은 나의 어머님에 대한 사랑이 아버지에 대한 것보다 전혀 모자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성운동가도 아니고 여권신장에 선봉에 나선 사람도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을 어머니라고도 부를 수 있는 아들입니다.

곽 철 환 목사
(윌셔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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