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10세기, 도전과 응전의 역사

2006-03-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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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역사로 보는 오늘의 교회 ⑪

1,000년전 세상의 세력 판도는 오늘날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기독교 문화의 중심이었던 서구 유럽은 오히려 후진국이었다. 7세기부터 대 정복 운동을 벌였던 이슬람 제국은 10세기까지 지중해 연안의 대부분 영토를 차지했으며, 멀리 중국 당나라와 영토 분쟁을 일으킬 정도로 방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과 문물교환이 자유롭게 이뤄져, 종이 제조기술, 비단, 그리고 고급 향료와 차등이 수입됐고. 이 당시 실크로드를 오가던 상인들의 구전 설화들을 모은 아라비안 나이트, 즉 천일야화와 같은 아랍문학 작품들이 빛을 보기 시작했다. 또한 아라비안 숫자를 개발해 기하학과 천문학에 큰 발전을 가져왔으며, 항해 기술에서도 절대적인 우위를 가지고 있었다. 한편 중국에서는 당나라 문화가 꽃을 피우고 있었는데 당시 수도 장안은 인구 100만, 높이 5m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사방 10Km에 달하는 대규모 도성을 이루고 있었다. 세계 각국과 무역이 활성화되어서 장안에 거주하는 인구의 10% 정도가 페르시아인, 투르크인, 소그드인 등 이방민족이었으며, 당나라 변방의 이민족들도 문화와 학문을 배우기 위해 장기 체류하는 등 장안은 이미 국제적인 대도시였다. 양귀비로 인해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던 당나라가 망한 후 5대 10국 시대를 거쳐 송나라가 10세기에 세워지는데, 이때부터 모든 관직을 과거시험을 통해 선발하는 문치 관료주의 정치의 틀이 정립됐다.
로마 제국이 몰락한 이후 서구 유럽이 다시 세계사의 중심무대로 나서기 시작하는 것은 16세기 이후의 일이었으며 그전까지는 사실상 이슬람 제국과 중국이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역사는 늘 승자 편이다. 오늘날 세계 역사가 대부분 서구 유럽을 중심으로, 유럽의 관점에서 기록되고 있는 것은 유럽이 근대화 과정에서 경제, 문화적 우위를 차지하게 됐기 때문이다.
영국의 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 문명을 도전과 응전이라는 인식의 틀로 분석하면서 문명은 창조적인 소수가 계속되는 도전에 성공적으로 응전하면서 발전한다는 가설을 주장했는데, 며칠 전 이라크 전쟁 기자회견을 하는 부시 대통령의 어눌한 모습을 보면서 토인비의 ‘도전과 응전’의 가설이 새삼스럽게 머릿속을 스쳐갔다. 오늘날 미국은 이 시대의 로마 제국과 같이 번영을 누리고 있지만 역사상 영원히 존재하는 나라는 없었다. 오직 인간의 역사는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는 과정이다.
10세기 기독교 역사는 아직도 길고 암울한 중세 암흑기라는 터널을 지나고 있다. 교황의 타락이 극도에 달해 이 시기에 13명의 교황이 암살 당했으며, 사생아가 교황 자리에 올라 온갖 성적인 타락을 저질렀고, 교황은 돈을 받고 주교 자리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세운 교회의 가장 우두머리인 교황이 사실상 그리스도의 참 사랑과 진리에 가장 대적되는 적 그리스도의 자리에 앉게된 것이었다.
한편 이런 와중에서도 기독교는 동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계속 확산되고 있었다. 러시아와 불가리아, 헝가리 보헤미안 사람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였으며, 특히 러시아의 블라드미르 왕은 본인이 직접 침례를 받은 후 989년 기독교를 러시아 국교로 선포했다.
baekstephen@yahoo.com

■10세기 주요 사건일지
▶ 907 러시아, 비잔틴제국 무역협정
▶ 909 베네딕타인 수도원 설립
▶ 929 보헤미안, 기독교 받아들임
▶ 936 독일, 오토 대제 즉위
▶ 989 러시아, 기독교 받아들임
▶ 993 로마 교회, 성인 반열 제정
▶ 1000 기독교적 종말론, 최후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 팽배.

백 승 환 목사
<예찬 출판기획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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