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양떼를 치며 ‘이웃집에 떡 돌리기(1)’

2006-03-1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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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가 충분치 않아 명절날에도 음식 구경이 쉽지 않던 시절에는 동네에서 혼인 잔치나 돌 잔칫상을 보아야만 겨우 빈대떡 같은 부침개나 국수 한 젓가락이라도 맛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콩 한 조각도 나누며 살아온 정 많은 우리 한민족의 인심은 먹을 것이 풍족한 이민 교회에도 여전히 차고 넘칩니다. 전 교인이 모여서 주일 점심식사를 할 때 주중에 잔치가 있었던 집에서 어김없이 시루떡을 대접하는데 잔치뿐만이 아니라 장례나 추도 예배를 드린 후에도 떡을 돌리는 모습은 인정이 넘치는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풍습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입니다. 특히 저희 교회는 거의 몇 주마다 가래떡, 시루떡, 인절미, 송편, 절편 같은 떡 구경을 할만큼 늘 풍성합니다.
교회 잔치는 아니지만 매년 9월이 오면 1년에 하루, 그것도 주일 아침부터 동네 한길 바닥에서 대형 스피커로 풍악을 울리며 대단히 큰 잔치가 벌어집니다. 대부분 중남미 분들이 거주하는 동네인지라 대여섯 나라가 연합으로 참가하는 센추럴 아메리칸 퍼레이드(Central American Parade)가 우리 교회 골목길 뉴햄프셔와 피코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그 주일은 새벽부터 길 모서리에 자리잡은 예배당으로 들어오는 두 길을 바리케이드로 막아버려서 도저히 주일 예배가 불가능해집니다. 그러니 우리는 울며 겨자 먹기로 교회 문과 주차장을 잠그고 9월 중순에 때아닌 야외예배를 드려야 할 처지였습니다. 제가 부임하기 전에는 매년 어김없이 야외로 나갔다고 하기에 저도 퍼레이드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바로 전 주일에 광고를 하고 그 다음 주일에 야외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예상이 빗나가 버린 겁니다. 정작 퍼레이드는 야외예배를 다녀온 다음 주일이었습니다. 부임 첫 해부터 이게 무슨 망신이람! 하지만 불행 중 다행히도 주일이 오기 며칠 전에 이 사실을 알아내고 퍼레이드 행사 주최측을 만나 주일 아침에 예배당으로 들어오는 길을 열어 달라고 부탁하고 그 대신에 우리 주차장과 교회 화장실을 오픈 하는 조건으로 합의가 되었습니다.
드디어 주일 예배를 드리는데 주차장이 모자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크게 소란하지도 않아 별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해부터는 이 날을 선교주일로 정하여 예배 시간을 한 시간 앞당겨서 드린 후에 이웃 주민들에게 떡을 돌리자는 생각이 불연 듯 떠올라 동네 잔치를 벌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 한 블록 이웃에 거주하는 15 가구 중에 한인은 두 집뿐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라티노 분들이었습니다. 이 분들이 우리 떡 맛을 알 리가 없을 것 같아 메뉴를 떡 대신에 갈비로 바꾸어서 그 분들을 초청했습니다. 주중에 정식 초청장을 만들어서 집집마다 직접 전달하고 주일 정오에 온 가족 모두 오시라고 했더니 9가구에서 40여 분이 오셔서 실컷 잡수시고 참석하지 못한 여섯 집에는 월요일 새벽기도를 마치고 음식을 싸서 떡 돌리듯이 배달했더니 그렇게들 좋아하시더군요.
그 다음 해에는 사방 두 블록에 거주하는 250가구를 모두 방문해서 잔치를 벌였는데 예상치 못했던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홍 성 학 목사
(새한교회 담임)

<다음 달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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