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범수의 선교하는 삶

2006-03-1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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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 안녕!

지난 한달 동안 다섯 번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이 계절에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봄기운이 대지에 올라올 때에 우리 몸이 그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쇠진하여 숨을 거둔다는 것이다. 가신 분들 모두 40~50대의 친지들이라 더욱 이별의 아픔이 크다.

A형제는 지난 10년 동안 미국 감옥에서 수감생활을 하다가 출감을 일주일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A가 그동안 보내온 편지에는 사랑하는 아들을 향한 애틋한 마음, 가족과 함께 살을 비비며 앉았던 리빙룸과 기르던 고양이, 따뜻하고 단란했던 가정을 그리워하는 심정이 가득 담겨있었다. 그는 어느 날, 한 줌의 재로 하얀 항아리에 담겨 우리 앞에 돌아왔다. 만기가 되어 남이 열어주는 철창문으로 나오기가 싫었을까? 자물쇠로 굳게 잠겼던 문을 ‘죽음’으로써 자기 힘으로 열고 나온 그를, 우리는 더 이상 만져볼 수도, 더 이상 어깨를 껴안고 등을 두드려줄 수도 없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의 묘지 곁에 그를 묻고 돌아오는데 하늘이 그렇게 파랄 수가 없다.
B여사는 폐암으로 갑작스런 죽음을 맞았다. 병이 발견된 지 두 달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 전까지 그녀의 몸은 아무런 증세를 느끼지 못했고, 발견했을 때는 이미 전신으로 암세포가 퍼져 있더라고 했다. 영결식장에서 B가 남긴 틴에이저 딸이 엄마를 그리며 쓴 조사를 읽었다.
<엄마가 곧 나으실 줄 알았어요. 왜냐하면 당신은 엄마니까! 그런데 이제는 내가 엄마! 하고 불러도 그냥 눈을 감고 대답이 없어요. 엄마는 천국에 가셨지요? 엄마와 함께 했던 즐거웠던 시간을 기억합니다. 엄마는 가셨지만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주셔서 고마워요. 그 추억 속에 엄마가 살아있다고 믿어요. 엄마와 함께 나누었던 수많은 이야기들, 내가 털어놓았던 비밀 이야기들, 엄마가 열심히 내 말에 귀기울여주셨던 것 기억하며 감사해요. 엄마와 함께 교회 가고, 엄마와 함께 맛있는 식당에 가고, 예쁜 옷을 골라주시던 것, 모두모두 내 기억 속에 들어있어요. 죽음은 엄마를 빼앗아갔지만 내 가슴속에 새겨진 기억은 빼앗아가지 못해요. 엄마가 보고 싶을 때마다 그 기억을 떠올릴 거예요. 그러면 엄마는 내 곁에 계신 것이겠지요. 엄마가 눈감으시기 직전에 내가 엄마,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라고 세 번이나 반복해서 말할 수 있어서 그걸 생각하면 내 마음에 위로가 돼요. 엄마, 사랑해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C씨에게는 어린 아들이 있다. 건강하던 C가 직장에서 갑자기 쓰러졌다고 했을 때 우리는 다음 날이면 그가 다시 활짝 웃는 얼굴로 나타날 줄 알았는데 그는 서둘러 먼길을 떠나고 말았다. C의 아들은 아빠에게 이렇게 인사했다.
<아빠, 모두들 아빠가 하늘나라에 가셨다고 합니다. 아빠는 언제나 나에게 인사를 잘 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는데 왜 아빠는 나의 작별인사도 받지 않고 아주 가버리셨나요? 사람들이 아빠를 땅에 묻으면 어떻게 하늘로 날아갈 수 있을까 걱정합니다. 늘 바쁘기만 하던 아빠를 미워했던 것 용서해 주세요. 아빠를 정말로 미워한 것은 아니었어요. 내가 먼저 자고 있을 때, 아빠는 퇴근하고 들어와 내 방에 오셨지요. 자고 있는 나의 이마에 키스해 주신 것, 나는 알고 있어요. 잠결에 아빠가 내 곁에 무릎 꿇고 나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 주시던 것, 기억해요. 아빠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잊지 않을 거예요. 나도 아빠 사랑해요. 아주 많이많이 사랑해요. 아빠, 안녕!>
천국의 소망이 없다면 이 세상 이별의 슬픔을 어떻게 견딜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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