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숙희 기자의 주방일기

2006-03-08 (수)
크게 작게
한국인에 대한 아들의 고찰

며칠 전 아들의 머리를 잘라주러 한인타운의 미용실에 갔다. 전에도 몇번 들른 적이 있는 곳으로, 실내에는 조용한 복음성가가 흘러나오고 상냥한 주인여성이 늘 반겨주는 곳이다.
머리를 감고 망토를 뒤집어쓴 아들이 머리를 깎기 시작했을 때였다. 웬 여성이 들어오더니 주인과 몇마디 주고받다가 갑자기 큰소리로 싸움이 시작되었다. 양측 모두 속사포같이 쏘아대었기 때문에 내용은 잘 알 수 없었지만 여주인이 극도로 화를 내고 있었고 다른 여성은 해명하느라 덩달아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열 받은 여주인이 한 손에는 아들의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다른 한 손에는 가위를 든 채 마구 흔들며 허공을 찔러대었기 때문에 나는 너무 놀라서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아들을 보니 역시 큰 충격으로 얼이 빠진 표정이었다.
머리를 자르는 중인데, 이성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곧 멈추겠지 하고 가만히 있었지만 ‘다다다다…’ 확성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격앙된 목청은 갈수록 커졌고, 잦아들었다가 또 다시 올라가고, 잠시 머리를 자르다가 또 가위가 허공을 나르고… 너무도 불안하여 당장 아들을 데리고 나오고 싶었지만 자르다만 머리를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지라 아들은 완전히 볼모 상태로 앉아있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10여분만에 문제의 여성이 가버리면서 싸움도 끝이 나서 아들은 머리를 마저 자르게 되었고, 여주인은 다시 상냥한 말투가 되어 미안하다고 사과하였다.
미장원을 나오면서 나는 아들에게 다시는 이 집에 오지 말자고 화를 내었다. 도대체 손님에게 서비스하는 도중 그렇게 감정조절을 못하면 어떻게 비즈니스를 하겠느냐고 투덜대자 아들도 너무 놀랐다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하지만 그런 무서운 상황에서도 날카로운 관찰력을 발휘한 아들, “그런데 거기 앉아있는 동안 한국사람들에 대해 또 다른 많은 것을 알게되었어요”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뭐냐고 묻자 “한국사람들은 싸울 때 말이 엄청 빨라진다, 행동이 대단히 과장되고 커진다(가위 삿대질에 놀랐나보다), 한 사람에게 화났는데도 주위의 모든 사람에게 화를 내고 소리지른다, 감정 조절을 전혀 못 한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사람들은 싸울 때 말이 안 빨라지냐”고 묻자 “미국사람들도 조금은 빨라지고 목소리 톤도 조금은 높아지지만 한국사람들처럼 갑자기 몇배로 뛰어오르면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돌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영화에서건 TV에서건, 싸우는 장면에서 알아듣지 못할 만큼 빠른 속도로 영어를 하는 미국인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사건 이전에도 아들은 자신이 관찰한 한국인의 특성에 대해 이따금씩 발표하여 나를 웃기곤 하였는데 그 동안의 발표 내용을 나열해보면 이러하다.
▲소리를 자주, 많이, 크게 지른다 ▲뭘 하면서 항상 주위를 흘끔흘끔 본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으면 반드시 박수를 한번 치고 웃는다(이 말을 듣는 순간 바로 내가 박장대소했다)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하고,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견디지 못한다 ▲기다리는걸 못한다 ▲차 경적을 자주 울린다.
또 하나 재미있는 발견은 ▲한국사람은 이름을 부르지 않고 인칭대명사(야, 너, 얘, 쟤 등)를 많이 사용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부모가 자녀를 부를 때조차 이름보다는 ‘야’ 혹은 ‘얘’ 하고, 친구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이름을 알면서도 ‘걔는’ 어떻고 ‘쟤는’ 어떻고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매번 지적하는 것이 하나 있다. ▲한국사람은 거의 모든 대화를 의문문으로 이어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질문들은 도저히 답변할 수 없는, 또한 답변을 요구하지도 않는 질문들로서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너 누가 게임 하랬어? 도대체 쟤는 왜 저래? 날씨가 왜 이 모양이지? 저 차가 미쳤나? 소금이 왜 이렇게 짠거야? 이걸 그림이라고 그렸니? 뭐 이런게 다 있어? 도대체 어쩌라는 거야?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하라는 공부 안하고 뭐하니? 이걸 어쩌지? 정말 웃기지 않니?…”
듣고 보니 정말 우리는 대화중 습관적으로 의문문을 많이 사용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열다섯살 밖에 안 된 녀석이 어느 틈에 그런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어른들의 행태를 분석했는지 신기하기도 하고, 미국에서 자란 아이의 눈으로 본 우리의 자화상이 너무나 우스워 배꼽을 잡기도 하지만, 그 중 상당부분은 이 엄마를 보고 느낀 것도 있겠는지라 부끄러워지기도 하는 것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