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감성시대의 패션 스스로 창조하는 유행

2006-03-04 (토)
크게 작게
매년 파리를 방문하지만 개선문이 바라보이는 곳쯤에서 언제나 느끼는 것은 마치 첫 사랑을 다시 경험하는 것 같은 두근거림입니다. 파리에서 공부하던 그 옛날로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전혀 낯선 곳에 발길을 내딛는 것 같은 두려움도 생깁니다.
언제 봐도 아름다운 파리의 풍경은 언제나 제 마음을 초심의 그것으로 돌려놓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해마다 파리를 방문하며 저는 갖고 있는 모든 고정관념을 버리려고 노력합니다. 고정관념이란 새로운 것의 창출을 때로는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무한한 창의성의 결정체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 잠재력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로 고정관념의 탈피를 얘기할 수 있습니다. 패션의 유행이란 바로 관념의 탈피입니다. 얽매여 있는 생각을 풀고 자유로이 날아갈 때 패션의 유행은 창조되는 것입니다. TGV 고속열차로 파리를 벗어나며 시야에 들어온 창 밖의 풍경은 이른봄을 느끼게 하는 옅은 초록빛의 싱그러움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제 마음 역시 그것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창조에 대한 두근거림으로 들뜨기 시작했고 40여분 남짓 달려 도착한 곳은 매년 두번의 트렌드 쇼가 열리는 Park De Exposition이었습니다. 유럽 17개국이 주도가 되어 열리는 행사인데 이번에는 미국 마이애미의 회사가 참가해 뜻하지 않은 반가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패션이 이제 유럽에서도 인정을 받는다는 흐뭇함도 있었습니다.
올해도 거의 3만명의 인원이 참가한 트렌드 쇼는 세계 패션의 유행을 움직이는 가장 큰 행사입니다. LA 컨벤션센터의 5배 정도 크기 행사장은 구석구석 돌아보려면 며칠이 걸릴 정도의 규모이고 각국에서 모여든 관계자들과 행사인원이 뒤섞여 내뿜는 패션에 대한 열기가 뜨겁게 정열을 표출하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눈여겨볼 수 있었던 것들 중에는 메탈릭 소재 원단의 거친 느낌을 제거해 부드러운 처리를 해준 영국제품과 원단 자체에 박테리아를 막아주는 소재 처리를 한 것인데 80번 이상 세탁을 해도 그 기능이 소멸되지 않는 이탈리아 제품이 있었습니다. 그 외에 부자재, 액세서리 및 다양한 원사 종류 등 패션의 소재들과 패션 동향 자료 및 유행 잡지들, 그리고 새로운 염색 및 약품처리 방법, 자수, 프린트, 레이저 커팅 등 소재에 변화를 주는 방식을 통한 피혁제품 쇼가 함께 했습니다.
특히 피혁제품은 저희 학교에서 새로 시작하는 제화 디자인과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어 반가운 마음에 관심 있게 보았습니다. 제화에 관계된 구두 굽을 제조하는 한 회사는 샤넬, 페라가모, 이브 생 로랑, 프라다 등 세계적인 유명 브랜드의 제품을 생산하는 곳이라 추후 저희 학교의 학생들을 견학시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행사기간에 틈을 내 루브르 박물관에 들러보았습니다. 한두 번 가 본 곳이 아니지만 그 장중함과 화려함은 언제나 보는 사람을 압도하게 만듭니다. 넓은 대리석으로 다듬어진 바닥과 고개를 들어야 볼 수 있는 높은 천장에서 공명으로 퍼지는 관람객의 발소리는 마치 잉그레스와 다빈치의 작품에 대한 감탄사 같이 느껴졌습니다.
저와 동행한 학생은 로맨틱한 비너스 조각상을 보며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다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역사적인 작가들이 평생 공들인 작품들을 마치 슬라이드를 감상하듯 짧은 시간에 지나쳐야 하는 것에 대해 무척이나 안타까워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오래 전 학생시절 주위를 의식해 수줍어하며 그림을 그리던 모습을 떠 올렸습니다. 이제 그런 모습을 제 학생들에게 넘겨주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초심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던져 버리고 순수한 열정을 표출할 수 있는 젊은이들에게 좀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이 제가 할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다음 번 파리 방문 때는 학생들과 함께 그런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계획을 갖고 박물관을 나서며 하늘을 보았습니다. 제 일에 대한 사랑을 다시 한번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소니아 김
www.academyofcoutureart.com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