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6-03-0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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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구 내 새끼


새 집으로 이사한지 삼일째 되는 날,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아버지다. 도저히 통증이 심해서 견딜 수가 없다고 아무래도 응급실로 가야겠다고 하셨다. 난 하던 일을 정신없이 놔두고 아버지와 삼촌과 USC 병원으로 달렸다.
차에 타고 가는 내내 아버진 기진맥진 기침을 계속해서 하시고 고통스러운 얼굴로 뒷자리에 기대어 계셨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아버질 응급실로 모시고 들어갔다. 걸음 걷기도 너무 힘들어하신다.
응급실에 들어왔지만 간호사는 아버지의 병원기록을 찾아와야 한다는 말에 아무런 조치 없이 시간이 많이 흘러가고 있었다. 삼촌은 아버지 옆에 앉으셔서 계속 기도와 성경말씀을 해드리고 계셨다. 응급실에는 환자 보호자가 한 명밖에 함께 할 수가 없어서 난 삼촌과 교대로 아버지 옆을 지키게 되었다. 나도 준비해 가지고 간 작은 성경책을 아버지에게 작은 목소리로 읽어 드리고 있었다.
아버진 제대로 누워 계시지도 못하신다. 성경책을 읽어 드리고 있어도 아버지는 전혀 집중을 못하시는 상황이다. 자꾸 불안한 생각이 든다. 이대로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어쩌지? 난 읽던 성경을 덮고 아버지에게 말을 시켰다.
“아버지! 아버지 하나님 확실히 믿으시죠? 하나님을 구주로 확실히 영접하셨죠?” 계속해서 묻는 질문에 아버진 신음 반 대답 반이다. 정신이 없으신 거다. 아… 이 일을 어쩌나… 정말 고통이 뭔가를 경험하고 계신 것 같다. 옆에 앉아 있는 나조차도 아픔이 느껴질 정도다. 아, 암이라는 것이 정말 무서운 병이구나.
아버진 너무 고통이 심한지 계속해서 진통제를 찾으셨다. 몇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아버지의 병원 기록이 왔고, 그제야 아버진 강한 진통제(몰핀)를 맞고 좀 안정을 찾으시는 것 같았다. 시간마다 몰핀을 맞지만 그래도 고통이 계속되고 있는가 보다. 의사는 아버지가 입원을 하셔야 한다고 했다. 입원실을 마련해 줄 테니 기다리라고 한 것이 벌써 몇 시간째인지 모른다.
아버지가 정신이 드시면 한국에 있는 오빠를 찾으신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보고 싶으신가 보다. 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고, 오빠가 내 핸드폰으로 급하게 전화가 걸려 왔다. 난 아무래도 오빠가 빨리 와야겠다고 했다. 한시간 한시간이 아버지가 너무 견디기 힘들어하신다. 오빠는 가장 빠른 비행기표를 알아보고 오겠다고 전화를 끊었다.
너무 늦은 시간이 돼서 아무래도 삼촌은 집으로 가시게 하고, 난 아버지 옆을 지켰다. 간간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승욱이를 물어보니 잘 놀고 있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아픈지 아나 보다. 그래도 이 상황에 승욱이라도 잘 있다니 조금 안심이다. 엄마, 언니, 오빠, 그리고 남편은 번갈아 가면서 전화를 건다. 다들 병원에 오지 못하는 상황이라 더 안절부절에 너무들 울어서 목소리가 변했다.
오후 2시에 도착한 응급실에 벌써 새벽 2시가 되어간다. 아버진 자꾸 내 걱정이시다.
“피곤해서 우야꼬… 집에 가야 하는데… 와 이리 사람을 기다리게 하노… 아~들(아이들)이 걱정이네” 나도 너무 피곤한 나머지 아버지가 진통제를 맞고 잠깐 주무시는 틈에 아버지 침대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아버지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어이구 내 새끼… 불쌍한 내 새끼… 어이구 내 새끼…” 아버지가 머리를 쓰다듬는 것에 잠이 깨었지만 머리를 들 수가 없었다. 침대 시트 위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내가 승욱이가 잘 때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이구 내 새끼…”하는 것이 아버지를 닮았나보다. 아버진 나에게 난 우리 승욱이에게 “어이구 내 새끼…”
이놈의 자식새끼가 뭔지… 난 아버지에게 정말 한번도 효도라는 걸 해본 적이 없는데 뭐가 예뻐서 내 새끼, 내 새끼라고 찾으시는지…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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