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6-02-2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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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자

하루하루 아버지의 증세는 악화되고 있다. 어머니는 매일 정신이 없으시다. 폐암에 좋다는 약과 음식을 찾으러 매일 이곳저곳을 다니시고 또 나를 대신해서 이사를 준비하고 계셨기에 많이 지칠 대로 지쳐 계셨다. 난 예정대로 이사를 위해 짐을 모두 꾸려두고 이삿날 아침을 맞았다.
무더운 날씨… 이삿짐 몇 개를 나르는 데도 온몸에 땀이 가득하다. 미국에 와서 승욱이 때문에 쫓아다니기는 무진장 다녔어도 난 노동이란 걸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아버진 미국에 오신 그 다음 날부터 힘든 일을 하시고 여태까지 오신 것이다. 아버지의 땀내 나는 작업복을, 아버지의 젖은 신발을, 아버지의 쓰시던 그 공구를, 아버지의 손때 묻은 장부들을 나르는데 그 동안의 아버지의 수고와 노력을 이 못난 딸이 십분의 일만큼을 이해하고 있다.
모든 짐을 싣고 4년6개월을 살던 아파트를 빠져 나왔다. 새로운 집으로 와서 싸온 짐들 제일 큰 박스에 걸터앉아 혼자 넋두리를 늘어놓고 있다.
‘휴~~ 왜 이리 사는 것이 힘이 드는지, 주변을 둘러봐도 나같이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이 모든 것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어디까지가 하나님 뜻인 건지, 이것이 저주인지 축복인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나쁜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모든 것이 원망스럽고, 억울하고, 분하다. 어디다 하소연을 하고 어디에서 이 모든 것을 보상받을 수 있을까? 그냥 열심히 기쁘게 감사하며 살았을 뿐인데 말이다.
시간을 보니 승욱이를 사랑의 교실에 찾으러 가야 하는 시간이다. 서둘러 승욱이를 찾아 새 집으로 데리고 들어오니 승욱이가 새 집에서 꼼짝도 않고 가만히 엎드려 있다. 배고프다고 먹을 것 달라고 할만도 한데 아무런 요동 없이 안고 들어와 내려놓은 거실 그 자리에 한 시간째 엎드려 있다. 난 그 틈을 타서 부엌 살림살이를 정리하고 있었다. 아무런 소리가 나질 않아 살며시 승욱이 옆에 가서 승욱이 이름을 불렀다.
“승욱아~ 이승욱~ 왜~ 뭐가 이상해?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어? 우리 이사왔어. 여기가 앞으로 우리가 살집이야” 승욱이가 내 목을 꽉 끌어안는다. 자기 딴에 뭐가 이상하고 무서웠던 모양이다. 내가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서 여기는 어디다, 저기는 어디다, 라고 말해줬어야 하는데 한 시간째 그냥 내버려두고 있었으니 혼자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미안, 미안, 엄마가 너무 정신이 없었나보다. 새로운 곳에 데려다 놓고 승욱이를 아는 체도 안하고 있었네? 우선 승욱이 장난감 박스부터 풀자. 그러면 빨리 이해하겠지?” 난 승욱이를 안고 장난감 박스에서 승욱이가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을 꺼내 승욱이 손에 쥐어 주었다. 새로운 집이 우리 집인 것은 아직 모르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만지더니 많이 안심하는 눈치다.
좋아하는 장난감을 들고 여기저기 조심조심 발을 뗀다. 전에 살던 집은 몇 발자국 앞에 뭐가 있는지를 완벽히 알던 승욱이다. 새로운 집은 집안에 계단도 있고 바닥도 카펫이 아니고 마루이기 때문에 모든 것에 스스로 조심하는 눈치다. 승욱이 손을 잡고 아래층 위층을 한번씩 데리고 다녀줬다.
얼굴을 보니 아주 흥미롭다. 아주 재밌어하는 얼굴이다. 집안에 계단이 있어서 그런지 아주 신기해하면서 반면에 무서워하기도 한다. 얼마 있다가 내 손을 뿌리치더니 혼자 여기저기 탐색전에 들어갔다. 나무마루이다 보니 승욱이가 콩콩거리고 뛰면 소리가 장난이 아니다. 콩콩거리고 뛸 때 나는 자신의 소리에 너무 신이나 있다.
저녁 무렵, 대충 짐 정리를 마치니 부모님이 새 집에 오셨다. 아버진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걷는 것도 너무 숨이 찬데 집에 계단이 있는 것이 많이 불편하신 모양이다. 편하게 해드린다는 것이 아버지를 더 힘들게 한 것이 아닌지 괜히 죄송스럽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승욱, 마치 남의 집에서 재밌게 놀고 집에 돌아갈 시간을 아는 양 나의 손을 잡고 밖으로 이끈다. 집에 가자는 거다. 우리 집으로… 전에 살던 그 아파트로… 계속해서 내 손을 이끄는 승욱이를 어떻게 이해시켜야 하는지 일단 승혁이를 동원하고, 승욱이 덮던 이불에, 장난감에, 할머니 할아버지… 그래도 막무가내다.
집에 가자… 우리가 살던 그 집으로… 내 손을 계속해서 잡아끄는 승욱이. 그래, 엄마도 돌아가고 싶어… 예전 우리가 기쁘게 살던 그때 그 집으로…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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