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보석이야기 리젠트 다이아몬드

2006-02-1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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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에 팔자가 있다면 리젠트(Regent) 다이아몬드는 박경리 작 ‘토지’의 여주인공 ‘서희’를 연상시킬 만큼 파란만장한 팔자를 갖고 이 세상에 나왔다.
한 개의 다이아몬드가 수많은 인간의 삶과 프랑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면 과연 믿을 수 있을까? 1701년 인도의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한 가난한 광부가 굉장히 큰 다이아몬드를 발견했다. 순간적으로 욕심이 생긴 그는 일부러 자신의 종아리에 큰 상처를 낸 후 훔친 다이아몬드를 그곳에 감추고 베로 종아리를 감아맸다. 그리고 그것을 팔기 위해 항구로 향한 후 먼 자유나라로 데려다주면 값의 반을 나눠주기로 영국 선장과 약속한 후 배에 오른다.
하지만 선장 또한 욕심에 사로잡혀 광부와의 약속을 어긴 채 그를 바다 속으로 밀어버리고 만다. 410캐럿이나 되는 큰 다이아몬드를 손에 쥐게된 선장은 그 다이아몬드를 인도의 상인에게 5천 달러에 팔아넘기고 낭비와 방탕한 생활 끝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 자살한다.
1702년 이 다이아몬드는 미국혁명으로 명성을 떨친 윌리엄 피트의 조부에게 10만 달러에 팔렸다. 그 후 정치가인 엘더 피트가 이것을 2년동안 연마시켜 140.5캐럿으로 만들어냈는데 잘려나간 돌들의 가격만도 상당했다.
1717년 연마가 된 이 다이아몬드는 프랑스의 필립 2세에게 팔린 후 ‘리젠트 오브 프랑스(Regent of France)’로 불리게 됐다. 마리 앙트와넷의 모자 장식용으로 쓰이기도 했던 이 리젠트 다이아몬드 또한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라지게 되었는데, 15개월 후 파리의 어느 집 처마 끝에 감추어진 상태로 발견됐다.
너무 유명한 보석이었으므로 상거래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 후 나폴레옹의 대관식 때 그의 칼자루를 장식했지만 엘바섬으로 귀양을 가게되자 둘째 부인인 마리 루이사와 부친인 오스트리아 황제 프랜시스 1세가 이것을 갖고 있다 프랑스로 돌려보냈다. 이후 프랑스의 왕관 보석으로 쓰였다. 1887년 프랑스 왕관의 많은 보석이 경매로 나와 팔렸지만 이 다이아몬드만은 나오지 않았다.
1940년 독일이 파리를 침략했을 때에도 돌벽 뒤에 잘 숨겨져 있다가 전쟁이 끝난 후 무사히 파리로 되돌아와 지금은 파리의 국보로 루브르 박물관에서 편안히 쉬고 있다.
‘다이아몬드는 지구가 인류에게 보낸 가장 아름다운 메시지’라는 말도 있지만 이제 한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영원히 박물관에 전시돼 인류의 유물이 된 리젠트 다이아몬드를 생각해볼 때 그 말만큼 더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싶다.

메이 김<젠 보석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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