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의 일기 승욱이 이야기

2006-02-1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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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이라는 시간

승욱이의 여섯번째 생일이 다가온다.
해마다 승욱이 생일이면 깜짝 이벤트로 직접 주문한 케익을 들고 학교로 찾아갔었다. 그리고 반 친구들의 선물도 하나하나 다 챙기던 내가 올해는 도저히 형편상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난 승욱이의 ‘사랑의 노트’에 승욱이 선생님과 트리샤 앞으로 편지를 보냈다. ‘너무 안타깝게도 승욱이 할아버지가 심각하게 편찮으시다. 너무 경황이 없어서 올해 승욱이 생일은 아마도 조용히 넘어갈 것 같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선생님들의 답장에 걱정이 가득하다. 나는 애써 괜찮을 거라는 답장을 다시 보냈다. 승욱이에게 여러 가지로 미안한 일이 많이 생기고 있다. 온통 신경이 아버지에게로 집중되다보니 승욱이 기저귀 갈아주는 것조차도 집에서 잊어버리기 일쑤다.
나는 마치 강행군이라도 하듯 퇴근 후에는 계속해서 이삿짐을 싸고 있다. 이삿짐을 싸다보니 옷방 구석에서 작은 하늘색 수술복 하나가 나온다. ‘어? 이거…’ 승욱이가 눈수술(각막이식 수술)할 때 입었었던 수술복을 내가 가지고 있었던 거다. 그날을 잊지 않으려 고이 간직해 두었던 것이 이제야 내 손에 다시 들어온 거다.
너무너무 작고 귀여운 수술복이 내 손바닥에 펼쳐져 있다. 그러면서 만감이 교차하듯 여러가지 일들이 마구 스쳐가고 있다. 승욱이를 낳고, 미국으로 오고, 승욱이가 눈 수술을 하고, 실패하고, 귀도 못 듣는다는 것을 알게 되고, 미국에 머무르게 되고, 승욱이가 학교를 가게 되고, 좋은 선생님과 좋은 분들을 만나고, 승욱이가 귀 수술을 하고… 정말 하나하나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섭리가 빠짐이 없다.
6년… 6년 동안 승욱인 너무너무 잘 성장해왔다. 너무 의젓하게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아이라고 모든 사람들이 생각했지만 지금 너무 많은 것을 하는 아이가 되어 있다. 그런 승욱이 생각에 미소가 지어지면서도 한편으론 긴 한숨이 나온다. 이젠 정말 별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버지가 저리 중병에 걸려 계시니 너무 기가 차고 할말이 없다.
아버지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난 벌써 한국으로 돌아갔을꺼다. 아버지의 잔소리가 아니었음 난 굉장히 나태했을 꺼다. 아버지의 대단한 승욱이 사랑이 없었음 나조차도 승욱일 별 볼일 없는 아이라고 생각했을 꺼다. 아버지의 헌신과 사랑이 아니었음 난 내리사랑을 승욱이에게 못했을 꺼다.
이런저런 생각에 또 슬프다. 승욱이의 작고 귀여운 수술복에 얼굴을 묻고 소리 없이 운다. 아버지가 옆방에 계시니 이젠 정말 끽 소리도 못 내고 울어야 한다. 그게 더 슬프다.
승욱이 엄마로 지난 6년간 참 많은 일을 한 것 같다. 좌충우돌 이리저리 뛰어 다닌 것은 나의 차 마일리지를 보면 단번에 알 수가 있다.
4년 된 차가 10만 마일을 훌쩍 넘어있으니 참 여기저기 뛰어다니기도 무진장 뛰어 다녔다. 지금부터는 승욱이를 위해 뛰어다니던 나의 차를 아버지를 위해 뛰어야할 때가 된 것 같다.
난 모든 것을 정리하는 뜻에서 고이 간직하던 승욱이의 수술복을 쓰레기통에 과감히 버렸다.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앞으로 전진하기 위한 나의 첫번째 정리가 시작되었다.

김 민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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